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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영 목사 특별인터뷰

2008-06-07|조회 83
"성도의 삶이 건강해야 한국교회가 건강합니다"


이수영 목사와의 인터뷰는 지난 2월 8일 새문안교회에서 진행됐습니다. 16년 동안 장신대 교수(조직신학)로서 목회자들을 길러내다가 이제, 그것도 역사적인 새문안교회 담임목사로 사역하게 된 이수영 목사에 대해 한국교회의 관심이 크다고 봅니다. 과연 교수가 목회를 잘할 수 있을까 또 어떤 목회를 꿈꾸고 있을까 등 그분을 향한 기대감이 적지 않습니다.

교수 사역과 목회 사역을 통해 한국교회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이수영 목사에게 오늘 한국교회 문제점들에 대한 진단과 그 나아가야 할 방향을 듣는다는 것은 개인적으로도 참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평소, 언론에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으신 분이 이렇게 본지의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신 것에 대해 심심한 감사를 표하며, 한국교회에 귀감이 되는 좋은 목회자가 되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최삼경 목사 주>


진행: 최삼경 목사(본지 발행인, 빛과소금교회 담임)
사진: 장운철 기자


- 최삼경 목사: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장신대 교수로 오랜 기간 동안 사역하시다가 새문안교회 목회로 자리를 옮기신 것에 대해 주변에서 적지 않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이수영 목사: 솔직히 말하면 새문안교회의 청빙을 거절하지 못한 것이죠.

- 그래도 평소에 목회에 대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요?

▲ 그렇죠. 내 마음 한 구석에 목회를 제대로 못해 본 데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50세가 넘자 목회에 대한 생각을 접게 되었고 더욱이 곧바로 수술을 하는 등 몸이 좋지 않아 그 생각을 완전히 접었었습니다. 그런데 본인이 여러 번 거절을 했는데도 새문안교회에서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강력히 요청하는데 거절을 못하였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 어떠세요? 교수로서 신학생을 가르칠 때와 목회자로서 목회 현장에서의 정체성의 혼란은 없으신지요?

▲별로 없어요. 신학교에서 교수를 할 때도 늘 교회를 생각했고, 더욱이 목회자 될 사람들을 양성한다는 책임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교수 생활을 했지만 목회자적 사고를 한쪽에 늘 견지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현장에 와서도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신학도 교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16년 동안 장신대에서 일한 것과 지금의 목회에 연속성이 더 많다고 생각하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 신학교가 목회보다는 학문 연구를 더 비중 있게 지향하는 것이 아니냐 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많은 신학생들이 "유학을 가겠다", "대학원에 가겠다"는 것이 추세인데, 이는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그렇게 자극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염려도 있습니다.

▲글쎄... 좋게 말하면 학생들 눈에 교수들이 좋게 보인 모양이죠(웃음). 교수직을 매력적으로 느꼈기 때문에 생긴 현상이라면 교수들이 성공했다는 말이겠죠. 그러나 비판적으로 말하자면, 처음부터 "목회자가 되어 교회를 섬기겠다"는 의식이 별로 확고하지 않은 채 신학교에 들어왔다는 말도 가능할 것입니다. 또 사실상 우리 학생 전체 수에 비해서 유학 가는 학생의 수는 많은 편이 아니에요. 극소수라고 할 수 있어요. 그 학년에서 그저 몇 명 갈 뿐이니까요.

- 요즘은 한국교회가 높은 학위 소유자의 목회자를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학위가 높아야만 능력있는 목회자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착각하는 사람이 많겠죠. 또 요사이 교회의 문이 좁아지니까 당장 어디 청빙하는 사역지가 없어서 그 때까지 조금 더 준비하자는 뜻으로 더 연장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 그런 점에서 교수님으로 목회를 잘하시는 것이 신학생들에게 많은 귀감이 되겠군요.

▲그럴 것 같습니다. 교수도 목회를 잘해야지, '역시 교수는 안되겠다' 그런 평가를 받으면 큰 일이죠(웃음).

- 본론으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목사님께서 보시는 한국교회의 건강도는 어떤신지요? 한국교회는 자랑스런 점도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사적으로 볼 때 선교 역사가 길어지고 교회가 비대해 지면 반듯이 끼지 말아야 할 것이 끼여드는 것을 보는데 그런 점에서 선교 2세기를 맞은 한국교회는 어떻습니까?

▲양면이 있다고 봐요. 건강한 면도 있고, 또 그렇지 못한 면도 있습니다. 좋은 점을 얘기하면 그래도 한국교회는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신앙을 유지하고 있다고 봅니다. 물론 한국교회 안에도 여러 가지 신학적인 성향들이 나타나고 있지만 대체로 볼 때 외국의 교회나 신학교에 비해서 성경적이고, 복음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점이 좋은 점이죠. 그리고 우선 모이기를 힘쓰는 열심이 있습니다. 뭐, 좋은 점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도 해도 모이지 않으면 건강하지 못한 것이죠. 그러나 한국교회는 일단 잘 모입니다. 그리고 감동만 받으면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고 헌금도 잘합니다. 이런 것은 참 좋은 것이라고 봅니다. 다른 나라 교회들이 부러워할 요소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 심하게 말하면 "병들었다"고 보는 면이 많습니다. 최근 들어서 그런 부정적인 인식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 너무 부정적인 의식이 고조될 때 오히려 선교의 문이 좁아지는데 지금 그런 불안을 너무 깊이 느끼는 것 같습니다.

▲현재 한국교회가 실제로 당하는 현실이죠.

- 이에 대하여 좀 적극적인 대처가 부족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 느낌이 들죠.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방향도 못 잡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흔히 제 2의 종교개혁이 절실하다는 말이 많은데 막상 나서서 개혁의 횃불을 당기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리고 또 남의 이야기하듯이 하지만 자기 먼저 개혁의 실천을 열심히 하는 사람이나 교회도 많지 않습니다. 물론 성실하고 바르게 말없이 목회를 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런 분들과 교회는 드러나지 않고 숨겨져 있으며 알려지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건강하지 못하다고 했는데 뭐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드나 하면 먼저 삶의 변화가 없다는 것이라고 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인식이 바뀌고 삶이 변하는 것인데 인간과 삶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고 교회 생활을 한다는 것을 자신이 인간적으로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으로만 여기는 겁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을 하나의 수단으로만 선택하는데 그치는 것이 문제입니다. 신앙이란 삶의 의미가 바뀌고, 목표가 바뀌고, 방식이 바뀌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도 안 바뀌고 신앙이라는 것을 이용해서 자기 목표만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 문제라고 봅니다. 이것이 기복신앙하고 통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교회에 나오게 되면 사업이 잘되고 돈이 잘 벌릴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니까 교회에 나온다는 것 외에 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이 건강해야 한국교회가 건강한 것입니다.

- 기복신앙의 뒤에는 신비주의적인 신앙이 뒷받침되어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는 신학교 쪽에서부터 풀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물은 수원지에서부터 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학교가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현재 하지 못하는 일이 무엇일까요?

▲신학교의 책임을 말한다면 신학교 교수들의 책임을 물어야 할 것입니다. 이번에 장신대 교수들이 교회 문제를 지적하고 자성하는 성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우선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이론이나 내용에 잘못이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신학교에서 교수들이 잘못 가르쳐서 교회가 잘못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 자체는 잘 가르칩니다. 저도 학교를 나오기는 했지만 아직도 신학교측과 동료라는 의식 속에서 얘기하자면 신학교 교수들이 가르치는 내용만큼 우리의 삶과 인격으로 학생들을 더 감동시키지 못했다는 점에 책임을 묻는다면 책임을 져야한다고 봅니다.

사실 목회 현장은 더 험하다고 봅니다. 학교에서 원론대로 배운 그것을 가지고 그대로 하려면 도무지 목회가 되지 않을 만큼 현장은 더 거칠고 험하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수들이 능력 있게 그것을 이길 만한 목회자로서의 자질과 자세와 역량을 충분히 그 속에 넣어주지 못한 부족을 수긍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 한국에는 3가지 신학이 있다고 봅니다. '신학교 신학', '예배당 신학', 그리고 '기도원 신학'입니다. 신학교 신학은 너무 텍스트(Text)에 치우쳐 있습니다. 신학교는 단지 목사가 되기 위한 과정으로 족하게 되고, 일단 목회자가 되면 무조건 교회를 부흥시키겠다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신학의 이원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신학교 신학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라고 보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이 현장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보다 예민하고 예리하게 관찰하고 거기에다 탄탄한 신학적 대안을 주려는 노력을 신학교수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목회적 현실성이 있는 문제들을 다루는 신학자들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 교수님들이 책상에 앉아 있다 보면 현장하고는 자꾸 멀어져 갑니다. 또 신학교수들은 목회자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고, 목회자들은 신학자들을 향하여 '당신들이 목회에 대하여 뭘 아느냐?'는 식의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괴리감을 좁힐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우선 교수들이 교회와 목회 현장에 대한 관심과 의식이 좀더 있어야 합니다. 순수 학문에만 빠져서 "교회에 대해서는 나는 모른다!" "목회 현장하고 나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생각을 갖고 책하고만 씨름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대한 관심을 좀더 갖고 목회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 교회들을 찾아가는 노력들을 하고. 노회에도 잘 참석하고, 그렇게 교회를 이해하려는 관심이 좀 더 많아야 합니다. 또 목회자는 목회자들대로 "당신들이 뭘 아느냐" 하는 태도를 가지면 안됩니다. 신학자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려면 다 알 수 있습니다. 교수 쪽에서 목회 현장을 이해하려는 노력의 부족도 있지만 또한 목회자들도 신학적인 사고를 잘 할 줄 모르는 면도 있습니다.

- 분명히 신학교 교수님들이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봅니다. 예컨대 한국교회 사이비 이단 문제입니다. 그 문제의 심각성을 다 알고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신도 하지 않고 하는 사람에게는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이단 사상을 가진 자들이 수시로 한국교회를 파고들어오려고 합니다. 그때마다 신학교 교수들에게 비판해 달라는 부탁을 하면 한결같이 '바쁘다'고 합니다. 물론 바쁜 것도 압니다. 그러나 바쁘다는 것으로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교회를 위한 신학교가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조직신학자는 조직신학자대로, 교회사가는 교회사가대로, 실천신학자는 실천신학대로 대처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세 가지 정도로 이유를 말할 수 있겠죠. 먼저, 목회 현장의 피해 상황에 대해서 절실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둘째는 정말로 바쁩니다. 저도 교수생활을 했지만 교수가 일주일에 25시간 강의한다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매일매일 강의하기도 바쁜데 다른 것을 할 사이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발 들여놨다가 시간 뺐기고 심적인 부담이 커집니다. 그리고 고소 당하고 경찰서 가서 취조 받아야 하고, 부담이 작용하니 아무래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된다는 생각이 듭니다.

- 요즈음 교단의 특색도 많이 사라집니다. 진보와 보수의 벽도 무너지는 요소도 있고, 교단간의 차이가 없어져 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자유주의 신학이 이단들에게 교리적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또 그들 속에는 드러난 이단보다 더한 이단사상도 나타납니다. 이에 대한 경계 의식은 어떻게 가져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저도 자유주의 신학이 사이비 이단을 대처하는데 장애 요소가 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사이비 이단들을 규정하고 비판할 때 기준이 성경입니다. 이단에 대하여 성경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야말로 성경을 부인하고 성경해석을 멋대로 하는 요소가 많단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단들은 왜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자유주의 신학을 주장하는 큰 교회나 교단은 그냥 두고 왜 우리 송사리들만 때리느냐는 물음에 직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가 복음주의로 바로 서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소위 성경적이고 보수 정통적이라는 교회의 목회자들이 윤리적으로 많은 문제를 보이는 경우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자유주의 쪽 사람들에게 비판의 대상이 됩니다. 말로만 '보수, 정통, 성경적'이라고 하면서 그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오히려 자유주의자들 중에 삶이 아주 본받을 만한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양쪽에서 모두 반성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 요즘 말이 많은 소위 '목회 세습'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몇몇 목회자들은 일반 언론에서 이 문제를 다루는 것 자체를 놓고 교회를 해롭게 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교회 안에서 목회자 세습 만연 문제가 불거져 나온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대기업의 족벌 경영, 그것 때문에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는 데 대한 강한 비판 여론과 함께 편승해서 나오게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 말은 어쨌든 어디서 출발했던 교회를 향한 일반의 눈이 아주 따갑고 비판적이라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우선 아버지가 담임 목사였던 교회를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목회자를 선택하는 문제는 그 교회의 고유한 권한이지 남이 밖에서 "이렇다" "저렇다"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를 이어서 교회를 담임하여 교회가 더 평안하고 부흥하고 발전한 사례가 있습니다. 또 교회의 연속성이 이어지고 바람직한 정통성이 더 잘 보전되고 성장하는 사례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아들이 아버지의 목회를 이어받는 것을 원론적으로 무조건 잘못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소위 '대형교회'의 대물림인 것입니다. 소형교회는 오히려 아버지가 갖고 있던 고난, 가난을 함께 물려받는 것이기 때문에 존경스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황제와 같이 신격화된 듯한 몇몇 대형교회의 목사직을 물려받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해 당사자들은 교회법상 우리가 아무런 하자가 없이 완벽하게 정당하게 처리가 되었다고 주장을 하는데 저는 별로 설득력이 없는 말이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신격화된 담임목사 앞에서 감히 누가 반대 의견을 한 마디라도 낼 분위기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런 속에서 민주적이었고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해도 설득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문제가 된 교회들 중에는 절차상 문제가 있는 교회도 있습니다. 민주적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교회법상 아무 문제가 없이 결정되었다고 해도 대형교회는 한국사회를 향해서 책임이 있습니다. 지금 교회들이 사회로부터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는데도 그 사회의 소리에 대해서는 귀를 꼭 막고 "우리는 상관없다, 밀고 나간다"고 할 때 교회 전체가 도매금으로 사회에서 받는 치명적인 손상을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생각지 않는다는 것은 대형교회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저는 교인들이 하나같이 아들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나선다고 할지라도 그 아버지 담임목사가 "안 된다"고 하여 아들을 정말 멀리 보내는 그러한 멋진 일이 벌어지면 좋겠는데 그런 일은 없고 그냥 자신들의 논리만 주장하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저변에 깔린 사고가 "이 교회는 내 교회다, 이 교회는 내가 세운 교회다, 내가 땀을 흘려서 세우고, 내가 이룩한 것이니 내 것이다"는 소유 개념이 들어 있다면 굉장히 심각한 것이라고 봅니다. 어떻게 교회가 성장하게 된 것이 자기 능력, 자기 헌신, 자기 노력, 자기의 공로입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면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 한국교회는 이런 문제들에 대하여 자정능력을 갖고 있다고 보십니까?

▲어려운 질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목회자들이 "우리 교회 하나만이라도", 아니 "나만이라도" 바르게, 말없이 꾸준히 하겠다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만이라도 바로 서서 '아, 저렇게 바르게 해도 목회가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해야합니다. '바르게 목회하면 교회가 안 된다'는 의식이 팽배하니까 너도나도 경쟁적으로 편법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해도 되고 또 그렇게 하니까 더 잘되는구나 라는 것을 보여 주겠다는 생각으로 한 명 한 명의 목회자들이 뼈를 깎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직적으로 개혁을 해보겠다고 지금까지 해봤습니다. 얼마나 목회자들의 모임이 많습니까? 그렇게 모여서 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결실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남에 대해서 뭐라고 비판하기 전에 목사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는 과연 잘 하고 있는가", 또 "우리 교회는 바로 서 있는가"를 열심히 살펴서 바로 잡아가려는 노력을 하고 또 그런 사람이 많이 확산될 때 한국교회가 자정능력이 생기는 것이라고 봅니다. 구호를 외치고, 모임을 결성하고, 캠페인을 벌여서 될 일이 아니라고 봐요. 그렇게 시도해서 결실을 맺은 것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 일반 언론이 교회를 바라보는 모습은 어떻다고 보십니까?

▲언론들이 공정하지 못하게 편파적으로, 또는 의도적으로, 기회만 있으면 교회를 공격하고, 교회의 공신력을 떨어뜨리는 보도들을 아주 조직적으로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한 문제가 위험수위에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언론을 비판하기 이전에 언론에 책잡힐 일을 교회들이 하지 말아야 된다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 잘못한 게 있어서 두 대, 세 대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한 대라도 맞을 만한 일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이거든요. 원래 그게 교회와 교회 밖의 세상과의 차이입니다. 세상에서 그 정도 했다면 기사거리도 안될 텐데 교회가 그러면 시끄러워지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것을 미리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세상과 행동방식이 다르고, 윤리의 기준이 다릅니다. 그것을 못 지키면 교회가 아닙니다. 그렇지 못하면 세상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언론에 대해서 우리가 원망하고 불평하기 이전에 책잡힐 일을 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해야 합니다.

- 한국교회 사이비 이단문제에 대하여 한 말씀 해주시죠.

▲우리 나라 우리 사회는 사이비 이단이 생기기 참 좋은 온상 같은 나라라고 봅니다. 이단 사이비가 없어진다는 것은 주님 오시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로 봅니다. 우리 나라는 종교적인 복합사회입니다. 다시 말하면 종교다원주의 사회입니다. 여러 가지 종교가 함께 있을 수 있고, 함께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신앙적인 절대기준이 없습니다. 다 상대적이거든요. 우리가 전통적으로 기독교국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오로지 불교 국가도, 유교 국가도 아니기 때문에 종교에 관한 한 절대 기준이 없습니다. 종교인 나름대로 자기 입장에서 절대화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를 보면 객관적인 기준이 없이 다 상대적이니까 이게 절대적인 어떤 평가를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게다가 우리 국민들이 아주 기복적이고, 무속신앙적인 경향이 강합니다. 사행심리도 크고, 종교를 통해서 세상적인 목표 달성하려고 하는 성향도 강합니다. 거기다 사회 자체는 불안하고, 불안한 사람은 어딘가 의존하고 싶고, 의존해야 하는데 의존해야 할 대상을 가릴 만한 객관적인 기준이 없고, 이러니 사이비들이 아주 득세하기 쉬운 온상과 같은 분위기가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교회 편에서 볼 때 하나는 신학적인 면과 또 하나는 윤리적인 면입니다. 교회가 신학적으로는 성경적, 복음적, 교리적으로 바로 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깨끗하면 일단 비판받을 게 없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 교회가 더 나아가서 소외된 사람, 불안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위로처가 될 수 있고, 그들을 품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을 상실했기 때문에 이단들이 많은 것입니다. 만일 교회 밖에서 볼 때 교회 안에 그런 사람들을 위로하고, 뭔가 의지가 필요한 사람들을 품어줄 수 있는 힘이 있어 보인다면 상대적으로 이제 정통교회가 이단 때문에 타격을 입는 것이 아니라 이단들이 정통교회 때문에 타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가 그것을 못했을 때 이단 사이비들이 창궐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모든 이단 사이비들을 다 없애겠다" 이런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러나 사이비 이단들이 교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을 미혹하는 것은 몰라도 교회 안에서까지 들어와서 교인들을 미혹하고 빼앗아 가는 그것은 막아야 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신앙이 바로 서고 삶이 건전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교회가 되는 길밖에는 없다고 봅니다.



- 지난 번 MBC PD수첩 보도 이후 기독교 안에 언론대책협의회라는 것이 발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기구가 바로 문제가 있다고 지목된 그 교회들의 후원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구조적으로 볼 때 언론사 하나를 운영하는데 많은 비용이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언론들은 대형교회에 의존하게 되고, 그렇게 될 때 언론들은 대형교회들에 대해 할말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한편으로는 '무대책이 대책'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그저 말없이 열심히 남이 알아주건, 몰라주건, 교회답게 교회성과 바른 신앙을 지켜가는 것이 대책이라는 생각입니다. 때로는 '대책이 대실책'을 낳는 경우가 많거든요. 언론을 입막기 위한 대책위원회라는 것은 대책이 아니죠. 언론이 스스로 입을 닫도록 꿋꿋이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것이 대책이라고 봅니다.

- 한국교회는 대부분 성도수가 50-100명 정도라고 합니다. 1000명 넘는 경우도 그리 많지 못하다고 합니다. 이런 와중에 대형교회로 인한 문제는 대다수의 소형교회 목회자들에게 적지 않은 의욕상실감을 주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서구 교회의 몰락 이유중 하나도 목회자의 의욕상실감이지 않았습니까?

▲제가 목회 현장에 뛰어든 것이 얼마 안되고, 중소교회들의 의욕상실의 원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분석해 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서구 목회자들의 의욕상실이 아주 가속화된 것은 비기독교화, 비신앙화 현상과 관련되었다고 봅니다.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주말이 끼고 하니 향락주의로 흐르는 가운데 사람들은 '문제 의식'이 없어졌습니다. 교회의 필요성을 상실하게 된 것입니다. 교회를 찾지 않고 하는 데서 오는 의욕상실이었다고 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가 어려워 보이지만 일본교회의 경우를 보십시오. 일본에서는 '9명만 있으면 교회된다'고 말합니다. 그 사람들만 십일조 철저히 하면 목회자가 목회할 수 있다는 겁니다. 만일 교인이 8명이 되면 그 교회의 목회자는 다른 교회보다 10% 정도 가난한 목회자가 될 뿐이겠죠. 이 말은 뭔가 하면 일본교회는 작아도 철저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한국의 50명 되는 교회는 일본 교회로서 보면 아주 큰 교회입니다. 물론 목사의 생활 이외에 선교나 봉사는 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교회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볼 때 목사가 욕심이 없으면 된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목회자의 의욕상실이 우선 내 과욕에서 오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다른 곳에서도 얘기를 했습니다. 요즘 우리 신학생들의 얼굴 속을 보면 그 얼굴에 대형교회 유명 목회자의 이름이 찍혀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런 대형교회를 만들고 싶어합니다. 대형교회 목회자를 흉내내면 대형교회가 되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필요 없는 꿈입니다. 과욕을 버려야 합니다. 내게 맡겨진 양이 100명이든, 50명이든, 30명이든 그들을 말씀으로 잘 양육하고 그들이 헌신하는 삶을 살도록 하면 의욕을 상실할 것도 없다고 봅니다. 그 이상의 욕심을 가지니, '빨리 몇 년 내에 1천명을 넘고 목회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인정을 받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있을수록 박탈감이 커지는 것입니다. 욕심만 안 가지면 됩니다.

또 목회자들이 당회원과의 가지는 갈등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목사가 참고 선량해도 괴롭히는 그런 당회원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도 목사가 참아야 하고, 목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가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을 견딜 각오가 없으면 목사를 하지 말아야합니다. 처음부터! 목사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만 받고 섬김만 받고 대우만 받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왔으면 그것부터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게 내가 교만에 빠질까봐, 내가 나태해질까봐, 내가 자만해질까봐.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시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받아드리고 품고 가야합니다. 그런 자세가 없으면 빨리 방향전환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도 욕심을 안 부리면 됩니다.

누가 물어봅니다. '어떤 목회하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저는 '그냥 보통 목회하겠습니다.' '보통 목회가 뭡니까?' '그저 욕심 안 부리고 큰 교회 만들려는 욕심 안 부리고 스트레스 안 받고 하는 목회입니다.' 욕심 없는 목사, 거짓말 안 하는 목사, 겸손한 목사, 이 세 가지를 갖고 있으면 기본적으로 목사는 성공할 수 있다고 봅니다. 과욕을 부리니 늘 불만족스럽고 괴롭고 짜증이 나고 의욕 상실이 오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다 보니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그러다 더욱 큰 거짓말을 하다가 목회자가 신뢰를 잃고 존경을 못 받게 됩니다. 또 목회자들이 아는 체하고 대접받으려 하고 잘난 체하다가 그것으로 넘어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겸손한 사람 뺨 때리는 사람은 없거든요. 겸손해서 절대 손해 보지 않습니다. 그것만 잘 지키는 사람이 보통 목사입니다.

- 대형교회 목회자들에게는 남다른 책임이 있지 않겠습니까?

▲책임이 큽니다. 그러나 대형교회가 된 자체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고 봅니다. 교회란 커지고 싶다고 해서 커지는 것이 아니거든요. 교회 목회자 치고 자기 교회가 커지고 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 목회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없습니다. 저부터도 커지면 좋겠죠. '아, 내가 잘 해서 커지나 보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커지고 안 커지는 것은 하나님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필요해서 대형교회를 만드신다고 봅니다.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작은 교회는 대형교회가 할 수 없는 일들을 찾아서 성실하게 하려고 노력해야겠죠. 대형교회를 존중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냥 억지로 크게 키운 교회라면 몰라도 목회자가 열심히 기도하고 욕심 없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대형교회들이 대형교회로서 할 일을 바로 하도록 위해서 기도하고 밀어주고 도와줘야 합니다. 그리고 대형교회는 대형교회대로 '작은 교회들을 위해서 할 일이 무엇인가?'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대형교회와 소형교회가 함께 공존하는 풍토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소형교회는 아주 필요합니다. 아주 재미난 예가 있습니다. 한국에 이름난 한 대형교회 옆에 조그만 교회가 있습니다. 제 제자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모두 개척할 때 거기다 개척한다고 '바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가 얼마나 재미있게 잘 모이는 지 모릅니다. 물론 처음 1년 동안은 자기 부인 앉혀 놓고 설교했습니다. 이 목사가 안수 받을 때까지 교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목회자가 전혀 욕심이 없습니다. 빨리 크고자 하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빨리 크는 것을 싫어했습니다. 왜냐하면 새로 오는 사람을 동화시킬 수 있는 동화력이 생기기 전에 외부에서 사람들이 몰려오면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러니까 동화력이 강해져서 조금씩조금씩 사람들이 올 때 빨리 그들을 우리 식구로 힘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절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이제 만 2년 가량 됐는데 100명에서 왔다 갔다 하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바로 옆의 대형교회가 있지만 절대 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자기들은 대형교회가 싫답니다. 교회 가는 맛이 안 난다는 거예요. 제가 가서 주일에 설교하고 성찬식을 집전했는데 얼마나 분위기가 좋은지 모릅니다. 온 교인들이 한 식구 같은 마음으로 만족스럽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것을 보면서 대형교회 때문에 소형교회가 안 된다고 피해 의식을 가질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대형교회가 좋아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형교회가 교회답지 못하다는 생각을 해서 일부러 작은 교회, 가족 같은 교회를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소형교회 목사들이 대형교회 목사들을 향해서 피해 의식을 갖고 그냥 비판을 하지 말고 빨리 교회를 크게 하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큰 교회가 아니라 바른 교회를 만들겠다는 소박한 꿈을 가지고 하면 얼마든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목회자 자성에 관한 최근 장신대 교수들의 성명은 요즘 교계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적지 않은 귀감이 될 듯합니다. 다만 후속조치가 없이 으레적인 성명으로 끝날까봐 염려되기도 하지만 말이죠.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얼마 전 그 교수 협의회장을 만났어요. 교수들도 그것을 발표하면서 혹시 일과성으로 끝나지 않을까라는 시각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렇게 끝나서는 안되다며 이것이 학교 교육의 현장 속에 구체적으로 후속적인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들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가시화되고 실현화될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그냥 한번 성명서 던지기 위해 하지는 않은 것은 분명합니다. 문제는 교회들이 호응해서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자기 갱생의 결단과 노력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한국교회의 문제 중 하나는 특히 총회장 선출 선거에서 금권 타락선거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해결책이 없을까요.

▲사람이 변하기 전에는 안되겠죠. 저도 들은 얘기지만 목사든, 장로든, 선거 때마다 그것을 이용하는 브로커들이 있다고 들었어요. 예를 들어서 '우리 여기 얼마나 모였는데 돈 보내라!'라는 식으로 하고 "점심값 갖고 와라. 안 오면 당신 떨어질 줄 알아라"는 식으로 위협하고 압박하고 돈을 뜯어내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것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정말 바른 신앙에서 사람이 변하기 전에 근절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쉽게 총회장 제도를 바꾸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안 바꾸려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주장하는 것이 최소한 기준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목사 안수를 받고 목회경력 20년 이상이라든가, 한 교회 몇 년 이상 있었어야 된다든가, 한 노회에 몇 년 이상 있는다든가 등 어떤 결격사항은 없어야 한다든가 등 그 기준을 정해 놓고 그 기준에 맞는 사람 중에 출마하고 싶은 사람들은 다 출마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제비 뽑으면 된다고 봅니다. 돈 쓸 필요가 하나도 없는데 왜 안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을 안 하는 이유는 몇 년 동안 공들인 사람이 있거든요. "이제 내 차례인데..." 얘기를 들으니까 몇 년 전부터 딱 지역별로 누구를 밀어주고, 몇 년 밀어 준 다음에 어떻게 한다는 약속이 있는데 공들인 사람들이 절대 반대한다는 겁니다. 이제 내 차례가 됐는데. 이런 사고가 척결되지 않는한 이 문제 해결 안 되는 겁니다.

- 기독교 내부의 모습을 지켜보는 시민운동의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필요합니다. 비판 견제세력이. 언론이든, 의식 있는 목회자 그룹이든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그 사람들도 자기 교회에서부터 민주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도 사람들이 '어떤 목회를 하겠느냐?'고 물을 때 첫째는 "보통목회를 하겠다"고 하고, 둘째는 "민주적인 목회를 하겠다"고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교회가 가장 비민주적인 집단이 되기 쉽습니다.

- 그런데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민주주의를 얘기하면 거부반응이 생깁니다. 장신대 교수님 중에 한 분이 목사님들에게 '교회는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말을 강의할 때마다 목회자들이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반응하는 것 자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교단 내의 한 목사님께서 교회는 민주적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것을 악하게 이용하여 목사의 권리를 제한하고 자신들의 힘을 기르는데 역이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입니다. 민주화라는 문제도 그런 부분들에 대한 솔직한 이해와 그에 대한 대안까지를 얘기해야 목사님들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민주화를 그렇게 이용한다면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말하고 싶은 것은 목사님 말 한마디 앞에 법도, 당회도, 총회도 없고 그것이 법이 되는 그러한 것을 버리자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교회 민주화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교인, 당회원, 교회 안에 있는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식견과 경험을 최대한 잘 취합해서 가장 교인들의 총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계획을 세우고 그런 방법을 추진하는 교회가 되자는 겁니다. 우리들은 늘 목회자와 장로 사이의 갈등을 얘기하지만 그것보다 더 심각한 것은 장로들과 다른 제직과의 갈등도 큽니다. 당회원 목사와 장로들 사이의 갈등 없이 잘 해나간다고 해서 그것이 잘 되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안수집사 그룹이나 권사그룹은 못마땅하고 비판할 수도 있거든요. "왜 바르게 민주화하지 않고 적당하게 당회원들끼리 타협해서 나가느냐?"고 합니다. 모든 것을 투명하게 하고 온 교우들의 생각을 반영할 수 있는 언로를 열라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 교회가 민주화되면 오히려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다 생각을 가진 목회자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민주화되었기 때문에 교회가 쇠퇴했다는 분석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 저는 교회가 민주화되면 더욱 발전한다고 생각해요. 서구교회의 쇠퇴도 세속화 때문에 쇠퇴했지 민주화 때문에 쇠퇴한 것이 아닙니다.

- 많은 경우 목회자의 '독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카리스마하고 독재, 독단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카리스마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입니다. 영적인 권위. 목사가 겸손하고 항상 진실하고, 자기의 사욕 없이 섬길 때 진정한 카리스마가 생긴다고 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 카리스마와 민주화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고, 함께해야 합니다. 교회가 민주화가 되어야 하지만 일반 사회와 같아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민주적이면서 거기에 '플러스 카리스마'가 있는 것입니다. 그 카리스마가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가 있고 민주적이지만 카리스마가 있는 것이 다른 시민단체와의 차이점이라고 봅니다. 그래서 나는 민주적으로 한다고 카리스마를 다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에요. 카리스마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그것을 잘 지키면서 교회를 민주화할 때 교회는 잘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 카리스마가 센 경우는 곧바로 독재로 갑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목사가 어떤 의식을 갖고 있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정말 강단에서 나오는 말씀이 신령하고 한 마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깊이를 갖고 있고, 그런데도 목사가 강단에서 하는 것과 그 삶이 다르지 않아 교인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그러면서도 겸손하고 소탈하고 욕심 없이 살고, 그리고 항상 말이 진실하다면 그런 교회에 무슨 문제가 생기겠습니까? 그리고 교인들의 의견을 교회의 사역에 반영해 간다면 누가 목사를 흉보고 뭐라고 하겠습니까? 카리스마가 강하다고 장로들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일방적으로 명령만 하여 겉에서는 말을 못하게 해도 뒤로는 다 불만과 불평과 비판을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독재적으로 목회하는 큰 교회마다 제직들이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수군거리고 불평하는지 모릅니다. 그렇지 않은 교회 하나도 없습니다. 단지 감히 내놓고는 말을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 '주 5일 근무제'에 대해서 염려하는 분이 많이 있습니다.

▲ 저는 요즘 목회자들 가끔 만나면 "주 5일 근무 절대하면 안 된다. 그럼 교회 망한다"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을 봅니다. 우려는 이해하지만 주 5일 근무제 때문에 사람들이 교회에 못 올까봐 그것을 반대하는 것은 안 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그리고 시행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에 맞게 대처하는 것이 순리입니다. 저는 그것을 반대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어요. '목사님은 주 5일 근무를 하게 되었다고 교회를 안 가겠습니까?'라고 말입니다. '온 식구들과 주말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 목사님, 교회에 안 가겠습니까?' 저는 묻고 싶어요. 목사가 아니더라도 믿음이 있으면 주일에 놀러 가지 않아요. 우리가 오히려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된다고 봅니다. 신앙의 훈련만 바로 서면 주 5일 해서 교회가 더 잘 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훈련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전에는 주일 하루밖에 쉬지 못했는데 이제는 토요일도 쉬게 되었으니 주일은 더욱 열심히 참여 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게 역으로 생각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토요일에 푹 쉬고 주일에 봉사한다는 생각을 하도록 몰고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목회자들이 경직화된 생각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신앙의 훈련만 바로 되면 문제 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봅니다.

제가 미국에서 6개월 살 때 미시시피주의 한 교회를 다녔습니다. 다 주 5일 근무였는데 주일 예배 1시간 30분 전에 교회에 와서 95% 신도들이 참여하여 성경공부를 했습니다. 신앙의 훈련의 문제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저희 <새문안교회> 주변에는 정말 교인들이 살지 않아요. 그런데도 저희 교회는 저녁 예배는 주일 7시입니다. 여름이나 겨울이나 변함없습니다. 그래도 늘 오는 사람은 옵니다. 신앙의 훈련 문제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들이 차가 없어서 놀러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니지 않습니까?

- 마지막으로 청소년 목회에도 듣고 싶습니다. 청소년들을 향해서 우리 목회자들에게 어떤 몸부림이 있어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 이 문제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청소년 문제가 오늘날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러나 요즘은 좀더 심각합니다. 저는 '열린예배'라는 용어 자체가 별로 좋은 용어라고 생각합니다. 열린 예배라는 것은 결국 의식(儀式)을 파괴하는 것을 전제하고 있더라는 점입니다. 의식을 다 바꾸고 없애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그 의미를 잘 이해시키고 그들이 잘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맞게 고쳐 가는 것이 중요하지 그것 자체를 다 없애는 것은 옳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음란, 퇴폐, 폭력, 엽기 문화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 더 문제라고 봅니다. 교회 아이들이라고 이것들로부터 다 보호받는 것이 아니거든요. 어른들보다 더 쉽게 노출되어 있습니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컴퓨터를 더 잘 다루기 때문이죠. 그것에 빠져 있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를 믿게 하고 교회 생활에 들어오게 하느냐가 문제라고 봅니다.

- 요즘 청소년들은 '복음송'을 교회의 최고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래서 많은 교회가 과거와 달리 '음악'에 신경을 쓰는 것 같구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보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본 교회들은 서구 북부에 가면 열린 예배가 주종을 이루지만 남부쪽을 전통적인 예배를 그대로 드리는 교회들이 많습니다. 엄숙하게 하는데도 몇 천명이 나와 예배당을 꽉 채웁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온 식구들이 다 와서 함께 예배를 드립니다. 청년들도 성경공부하고 다 합니다. 저희 새문안교회도 열린 예배 형태의 예배를 시도했습니다. 저희는 5부 예배를 청년예배 스타일로 바꾸려고 했는데 오히려 청소년들이 반대가 많았습니다. 청년들이 전통적인 예배를 그대로 원한다는 겁니다. 단지 따로 예배를 드리되 다른 예배와 똑같은 예배를 드리고 싶다는 것입니다. 대학생들의 반대로 저희는 시작을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청년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것은 음악이 아니고 '메시지'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정말 청년들을 각성시키고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음악이 아니라 메시지입니다. 교회로 끌어 앉히는 것은 음악 갖고 될지 몰라도 그들을 변화시키고 그들을 일꾼으로 만드는 것은 메시지라고 보고 그것이 옳다고 봅니다. 청년들도 메시지 때문에 모이는 교회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바쁘신 중에 시간을 내주시고, 또 유익한 말씀들을 들려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최삼경
월간 <교회와신앙> 발행인, 빛과소금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