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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 기독교사이트 이야기

2008-06-21|조회 88
안티기독교사이트를 둘러싼 이야기





공존의 이름으로 “Anti”바라보기


‘안티기독교인’을 만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꼬박 나흘. 안티기독교사이트를 뒤져 15명 가량의 안티기독교인들에게 메일을 통해 취재요청을 했고 어렵게 4명과 접촉할 수 있었다. 그 중 두 명은 익명으로, 한 명은 실명으로 서면인터뷰에 응했고, 익명이 보장된 가운데 한 사람을 직접 만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안티기독교인들이 무응답으로, 일부가 취재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개인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공통적인 배경이 깔려 있었다.


인터뷰를 거절한 한 안티기독교인이 ‘이미 기독교언론의 인터뷰가 몇 차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안티기독교인들의 입장이 상당히 왜곡 보도되었고, 피해를 당한 경우가 있어서 대부분 인터뷰에 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던 것처럼, 인터뷰를 거절했던 이들이나 응하는 이들조차도 기독교인과 기독교언론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인, 그리고 안티기독교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편안히 대화하기 어렵고 만날 수 없는 현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의 배타성과 비신뢰성’때문이라고 강하게 꼬집었지만, 설령 반대의 경우라 해도 누군가에게 부정적 선입견을 갖게 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안티기독교인과 기독교인. 그 둘 사이에 깊게 패인 골은 마치 한반도 분단의 현실처럼 넘어서기 힘든, 보이지 않는 철책선처럼 느껴졌다.

“기독교의 배타성과 우월주의가 싫어!”
대략 3년 전 처음 인터넷에 등장한 안티기독교사이트. 정확한 수를 헤아리기는 어렵지만 활발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사이트는 20여 개 안팎이다. <안티기독교> <검은십자가> <무신론자의 모임> <십자가 불꺼> <안티바이블> 등의 인터넷 사이트와 <기독교비평> <기독교(개신교)를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포탈사이트의 인터넷 카페를 중심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안티기독교인들의 수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그러나 인터넷 카페로는 가장 큰 규모인 <기독교비평>의 회원수가 1,000여 명, 가 500여 명이 넘는 것을 볼 때 최소한 1,000여 명 이상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기독교에 ‘안티’하는 것일까. <기독교비평> 카페의 한 운영자는 이렇게 말한다.
“안티기독교인들 중에는 기독교에 대해 염증을 느껴 찾아오는 이들도 많고 무신론적 사고에 근거한 경우도 많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공통점은 기독교의 배타성과 패거리주의가 싫어 오는 것이라는 거죠.”

같은 카페의 다른 운영진인 김민혁(가명·26) 씨도 “대부분의 안티들은 기독교의 배타성이나 우월주의 등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경우가 많다. 그런 부분에 대한 경험은 우리 주위에서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들이다. 전철을 타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사람들이 주는 피해나 제사문제로 겪는 마찰도 굉장히 빈번한 일이며,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이 만드는 사건들은 기독교의 우월주의에서 나온 게 많다”며 “단군상 훼손사건이나 불상, 법당 훼손사건은 좋은 예”라고 말했다.



◇안티기독교사이트의 정확한 수는 헤아릴수 없지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사이트는 대략 20여개로 추려볼 수 있다.
다각적 이해와 접근이 필요한 안티기독교사이트
안티기독교사이트를 모두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자칫 사이트들을 곡해해 받아들일 수 있는 소지가 있다. 언뜻 보기에 양상은 비슷하지만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를 사회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에 중점을 두는 사이트가 있는가 하면, 성서 자체에 대해 학문적인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고, 그 둘의 중간적 입장에 있는 사이트도 있기 때문이다. 또 다소 과격하게 느껴지는 분위기로 기독교인과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며 ‘기독교 박멸’을 외치는 과격한 이들이 있는가 하면, ‘기독교의 부정적인 면을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취지를 밝히는 사이트도 있듯이, 각각의 사이트도, 안티 개인도 차이를 보이고 있다.

김민혁 씨도 “안티기독교인들을 다 똑같다고 보기는 힘들다. 굉장히 다르다. 기독교를 박멸해야 한다는 사람도 있지만 다소 온건한 사람도 있다. 또 감정적인 데 치우친 이들도 있지만 나름의 입장에서 정연하게 비판을 하는 이들도 있다”고 지적하며 “안티기독교인들을 동일선상에서 단편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또 안티기독교인들이 기독교에 대해 비판하는 점, 성서와 기독교의 근원적 종교성에까지 문제를 제기하는 현상 등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판단에 앞서 좀 더 신중한 시각이 필요하다. 성석환(문화선교연구원) 목사는 “안티기독교인들 주장의 대부분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해방과 해체 논리, 근대주의의 이성중심주의에서 발생한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는 인식을 해볼 수 있다. 문제를 제공한 교회의 책임과 반성해야 할 부분은 수용해야 한다. 하지만 안티사이트는 사회학적으로, 그리고 문화적으로, 마지막으로 신학적으로 명확히 해명하고 분석해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기독교는 사회적, 문화적, 신학적으로 해명하고 이해하는 좀 더 적극적인 이해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안티기독교사이트를 바라보는 기독교인들의 시선은 대개 ‘기독교를 공격하는 반기독교 세력’이나 ‘기독교에 상처입은 구원받아야 할 대상’ ‘기독교인이나 일반인에게 반기독교적 감정을 확산시키는 이들’ 등 단편적이고 다소 감정적 차원의 이해에 머무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안티기독교사이트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위한 기독교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충분한 대화의 공간이 되지 못하는 현실
안티기독교인들의 논거가 타당하냐, 그렇지 못하냐에 앞서 안티기독교사이트는 그들이 주장하듯이 ‘열린 토론의 장’이 되고 있는지에 대해 100% 긍정의 시선을 줄 수는 없을 것 같다. <안티예수>라는 사이트의 운영자가 “이 사이트는 기독교에 대하여, 진실된 토론을 하는 곳이다. 기독교, 특히 폐쇄적인 우리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정직하지 못하게 한다. 안 믿는 이들까지도 기독교라는 주제에 대하여 솔직한 의견을 털어놓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라고 설립 취지를 밝히고 다른 사이트의 설립 목적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염두할 때, 취지대로라면 기독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을 충분히 개진하고 토론할 수 있어야 하지만, 게시판을 통해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대화라기보다 힐난과 비아냥에 가깝고 욕설과 비어가 많기 때문이다. 그것은 안티기독교인과 기독교인들 모두를 아우르는 현상이다.

진지한 의견이나 문제, 비판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이트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으며 전반적인 분위기가 그렇다고 하기 어렵다. 이런 문제는 안티기독교사이트의 운영자들도 지적하는 바다. 한 운영자는 “과격안티들과 광신자들이 게시판에 욕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안티사이트 운영자들 사이에서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 안티든 그렇지 않든 가리지 않고 무조건 삭제 조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티기독교 논의를 위한 기독교사이트인 <안티기독교인을 사랑하는 범기독교인의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는 조규남(행복교회) 목사도 “안티기독교사이트에 진지하게 글을 올리는 이들도 있지만 익명성을 입고 심한 욕설이나 말장난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 폐해는 생각보다 심하다”고 지적했다.

기독교인들의 대화 참여의 필요성
단편적으로 ‘안티기독교사이트는 반기독교적인 부정적 세력’일 뿐이라 일축하는 것은 다소 섣부른 판단일 수 있다. 주지하다시피 사이트를 통해 우리는 ‘성서와 기독교 교리가 허구’라고 이야기하고 기독교인을 ‘개독교인’이라 부르며 ‘예수는 사기꾼’이라 말하는 이들을 만나야 하지만, 그 속에는 한국 기독교를 향한 날카로운 일침도 담겨 있다는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것은 안티기독교인들의 기독교 비판이 모두 정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안티기독교인들이 보여주는 모습 자체가 이 땅의 기독교가 서 있는 현실이요, 역사적 상황 속에서 계속적으로 해명해야 할 신학적 작업의 수행을 보여주는 일이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안티기독교인들의 주장에 대한 사회문화적 분석을 비롯한 신학적인 이해와 해명 작업은 기독교인들에게 남아 있는 과제다.

<안티기독교인에대한범기독교인의모임>과 <안티기독교를사랑하는모임> 사이트 등 몇 개의 커뮤니티는 안티기독교인에 대응하는 기독교사이트로 기독교인들과 안티기독교인들간의 대화를 위한 목적으로 개설됐다. 안티기독교사이트가 기독교인과 안티기독교인과의 대화의 공간으로 자리매김하지 못하는 현실을 읽고, 그렇다면 ‘기독교에서 안티기독교인과의 대화를 시작해보자’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안티기독교인들과 대화하는 데 있어 사회문화적, 신학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아직은 초보단계다. 더욱이 안티기독교인들 참여율이나 반응도 아직은 낮다. 그러나 그런 노력으로 그 곳에서 기독교인들과 대화를 시작한 몇몇의 안티기독교인이 생기기 시작했고, 현재 활동하고 있는 조규남 목사는 “작지만 이렇게 시작하는 대화들이 안티기독교인들과 만남의 시작점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안티기독교를 사랑하는 모임 www.antisarang.org>.

열린 희망찾기, 가능할까?
그러나 안티기독교인들과의 만남과 대화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김 진(크리스찬아카데미) 목사는 “한국 기독교가 성숙한 종교 모습을 지니지 못한 것은 일차적으로 큰 원인이지만, 안티기독교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들도 분명히 있다. 기독교적 배타성의 경우, 그건 기독교뿐 아니라 타종교들도 갖고 있으며 오히려 종교적 배타성은 한국 종교문화의 일반적 특성이라는 점은 분명 주지해야 한다”고 지적하며 “기독교의 부정적 요소들을 전체 기독교의 모습이라 확언하고 인식하는 것은 애초 기독교인과 대화를 단절하는 자세다. 안티기독교인들 스스로도 기독교인에 대해 열린 자세를 갖고 있는 것인지는 중요한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그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명확한 사실 하나는 우리에게 이 땅위에서 공존하는 한 적대적 대응과 반목은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적어도 기자가 믿고 있는 하느님은 그 대상이 누구건 갈등과 대립을 옳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안티기독교인들과 대화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들의 비판에 대해 수용해야 할 점과 비판, 토론해야 할 점을 구분해야 한다. 그들이 지적하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 그것은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임에 틀림없다. 기독교인으로서 이 현실은 바로 자신의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이 언급하는 성서와 교리에 대해 지적하는 문제점에 대해서 진지하게 토론해야 하며, 진지하게 숙고되지 않은 비판과 근거없는 비난이라면 철저한 기독교적 변증도 할 수 있어야 한다. 문제는 수용과 비판, 토론의 지점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그들이 틀렸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이 세상에 나란히 공존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적어도 갈등과 대립과 미움의 골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것은 안티기독교인들도 기독교인들에 대해 열린 대화의 자세를 품고 있을 때만 가능하다. <한국기독교성서포럼> 사이트의 운영진이자 반기독교인이며 무신론자인 석동진(41) 씨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안티기독교사이트들이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기독교를 비난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하지만 기독교인들 역시 안티기독교사이트들에서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태도를 버리고 타종교 타문화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종교마저 초월하는 진정한 보편인으로 다시 거듭나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과 종교, 철학, 인생관 등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체험과 사고를 존중해 주는 자세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디 그의 마음뿐이랴. 이 글을 읽어가는 모든 기독교인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주간 기독교
김진아 기자 nebo@cnew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