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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일찍 돌아온 전병욱 목사/ 2012-06-08

2013-08-02|조회 187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는 피상적 회개와 값싼 은혜



▲ 전병욱 목사가 진정으로 회개했다면 그렇게 성급하게 교회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전 목사는 자신의 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마당에도 그 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백하거나 깊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뉴스앤조이 자료 사진)

전병욱 목사가 홍대 앞에 새교회를 개척했다고 한다.

그의 컴백이 그의 스캔들만큼 화제가 되고 있다. 본인도 호기심에 이끌려 그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지난 주 설교를 들어 보았다.

변함없이 활기 발랄한 목소리로 특유의 유머와 재담을 섞어 가며 그럴싸하게 한 가닥 설교를 뽑아낸다.

 비록 그의 명성은 산산이 금갔지만 설교 제작의 은사만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듯하다.

 그의 컴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것이 한국교회에 미칠 여파는 무엇인가?

그렇게 범죄한 목사가 다시 강단에 서도 되는 것인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교인들의 본이 되어야 할 공인의 범죄는 일반 교인의 죄와 비교할 수 없이 중대하며 주님의 교회에 심대한 타격을 입힌다

. 더욱이 무명한 작은 교회 목사의 범죄가 미치는 피해는 그 공동체 안에 그치나, 전 목사같이 대형 교회를 목회하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친 목사가 실족하는 경우는 그 여파가 엄청나게 커진다.

삼일교회 교인들은 물론이고 전 목사의 설교와 책들을 통해 영향을 받은 수많은 교인이 받았을 상처와 그들이 느꼈을 실망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회의가 얼마나 컸으며, 그들의 영혼에 미친 무형적인 폐해가 얼마나 막심했는지는 다 가늠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들 중에는 교회에 등을 돌린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한국교회의 이미지는 얼마나 더 손상되었으며 복음의 빛은 얼마나 가려졌는가?

목사의 그런 범죄는 주님의 교회에 큰 스캔들을 불러오며 주님의 소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그러므로 목사의 그런 죄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며, 용서라는 이름으로 그런 목사를 쉽게 강단에 복귀시켜서는 안 된다. 그는 회개함으로 죄 용서함을 받았을지라도 주님의 교회와 백성에게 끼친 엄청난 해악으로 인해 평생 통회하는 마음으로 겸허히 자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진정한 회개는 회개한 마음의 상태, 즉 겸손하고 애통한 마음으로 계속 살아가는 것까지 포함한다. 자신이 저지른 짓을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금세 잊어버리고 전처럼 행동하는 것은 자신의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철면피적인 뻔뻔스러움이다.

흔히들 회개하면 주님이 용서하시고 우리 죄를 기억도 하지 않는다고 했으니 우리도 우리 죄를 잊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용서받은 과거의 죄를 다시 기억하여 낙심하고 정죄의식에 빠지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 죄의식은 떨쳐 버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죄를 아무리 잊으려 해도 잊을 수도 없고 또 잊어서도 안 된다.

그 죄에 대한 기억으로 인해 우리는 평생 겸허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요즘 교인들이 회개했다고 하면서 자신의 죄를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는 그 전과 똑같이 경솔하고 부주의한 모습으로 살아가다가 다시 그 죄를 반복하곤 한다. 이런 피상적인 회개와 값싼 용서의 은혜가 한국교회를 병들게 하고 있다.

전 목사의 모습에서 이런 얄팍한 회개와 용서의 남용을 보는 듯하다. 그가 진정으로 회개하여 마음이 깨지고 겸비해졌다면 그렇게 성급하게 교회를 시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이미 자신의 죄가 공개적으로 드러난 마당에도 그 죄에 대해 구체적으로 고백하거나 깊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이 회개에서 최소한도로 있어야 할 기본 요소인데도 말이다. 전 목사를 따르는 이가 그를 변호하는 글에서 전 목사가 회개했는지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이니 우리가 판단할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는 회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는 말이다. 목사는 공개적으로 드러난 자신의 죄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그 범죄를 아는 모든 이들이 충분히 납득할 만한 고백과 뉘우치는 자세를 통하여 회개의 진정성과 투명성을 보여야 하는 것이 개혁 교회가 가르쳐 온 회개의 기본이다.




▲ 전 목사를 따르는 교인들이 그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그가 확실한 회개와 회복의 과정을 밟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그것이 전 목사와 많은 영혼들을 살리는 길이다. 사진은 5월 27일 홍대 새교회 창립 준비 예배 모습. ⓒ뉴스앤조이 정재원

전 목사에게 이런 회개가 있었는가? 전 목사는 계속 발뺌하다가 모든 것이 들통 나 더는 부인할 수 없게 되자 마지못해 범죄한 것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가 고백한 것은 "교회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한 사실이 있어, 이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당회에 지난 7월 사임서를 제출한다"고 말한 것이 고작이었다. 이것을 회개라고 할 수 있을까? 공적인 회개는 제기된 혐의와 의문에 대해 분명히 인정을 하거나 부당하게 오해받고 있는 점이 있으면 해명해야 한다.

그것이 자신의 범죄로 인해 혼란과 고통 속에 휩싸인 수많은 교인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며 사죄하는 태도이다. 그의 고백은 그의 범죄의 실체와 진상을 교묘히 감추는 아주 애매모호한 고백이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고단수로 덮어버리는 행위이다. 그러니 이미 밝혀진 사실을 놓고도 진실 공방이 계속되는 것이고 온갖 소문과 억측이 난무하여 교인들을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급기야 그를 따라 교회를 시작하는 이들은 그의 범죄가 심각한 것이 아니라고까지 변호하고 나서게 된 것이다. 전 목사는 그의 범죄 사실을 두루뭉술하게 고백하고 넘어감으로 빠져나갈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실체가 없는 모호한 고백을 통해 아직도 그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 추종 세력을 규합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를 변호하는 이가 올린 글은 그 내용이 옹색하기 짝이 없고 앞뒤 논리가 맞지 않는다. 앞에서는 "이 사건은 성추행이라고 보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해 놓고는 뒤에 가서는 "저는 목사님의 잘못이 가볍다고 얘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것은 적어도 그분이 청춘을 바쳐 온 교회를 사임할 정도에 이르는 큰 잘못이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성추행과 같은 심각한 죄가 아니라는 것을 극구 변호해 놓고는 뒤에 가서 큰 잘못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모순되는가? 청춘을 바쳐 온 교회를 사임할 정도로 큰 잘못이지만 새교회를 시작하지 못할 만큼 큰 잘못은 아니라는 말인가?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전 목사의 범죄를 덮으려 하고 진상 조사와 대처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 삼일교회 장로들에게도 상당 부분 책임이 있다. 전 목사가 개척 교회를 시작하여 교인들을 많이 끌어갈 것 같으니 뒤늦게 전 목사의 비리를 밝히는 것은 하나님과 교회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하는 책무를 다하는 것이라기보다 교인들을 빼앗기지 않고 대형 교회를 기업처럼 유지하려는 매우 인간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전 목사를 옹호하는 이들이 그런 저열한 동기에서 비롯된 발표를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하는 빌미를 제공한 것이다.

전 목사의 성범죄의 내용에 대해서는 세간에 소문만 무성하고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조금만 신경 써 알아보면 여러 언론 매체의 조사와 피해자와의 인터뷰 등의 자세한 자료들을 얼마든지 접할 수 있다. 그들의 증언이 거의 일치하는 점은 성추행의 정도가 묘사하기에는 너무 충격적이라는 것과 단회적인 범죄가 아니라 여러 여성들이 피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조금의 거짓이 없이 있는 그대로 보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말이 허위라고 강변하는 전 목사를 옹호하는 측의 입장까지 고려해서 그런 보도를 다 믿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미 삼일교회의 제직회에서 보도된 내용의 일부는 사실임을 공적으로 천명하였다. 그토록 전 목사의 비리를 은폐하려고 했던 삼일교회가 이 정도 사실을 규명해 주었으면 진실 공박은 일단락된 것으로 봐야 한다. 만약 이렇게 공개된 사실에 이의가 있다면 전 목사 자신이 직접 나서서 그에 대한 분명한 반증과 해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 목사가 그 사실에 대해 수긍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공개된 바에 의하면, 그의 죄는 단순히 인간의 연약성에서 비롯된 실수 정도가 아니다. 그 죄질이 심각한 것은 누가 봐도 파렴치할 정도로 매우 고의적인 범죄이며 성도착증에 가까운 변태적인 행위이다. 공개된 바가 틀림없는 사실이라면 그는 정신적으로 깊은 치유가 필요한 사람이다.

무서운 일은 그런 사람의 손에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질 때 많은 영혼들을 또다시 상하게 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치료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사실이 교인들이 듣기에 은혜로운 설교를 만들어 내는 뛰어난 재주와 은사로 교묘히 은폐되어 있다는 점이다. 설교는 너무도 이치에 맞게 잘하는데 돌아서면 완전히 이치와 상식을 초월하는 짐승 같은 행동을 하니 이런 이가 어찌 강단에 설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막간을 이용하여 그런 해괴한 짓을 하는 것은 치유하기 쉽지 않은 성도착증처럼 보이는데 그가 어떤 치유 과정을 거쳤는지, 치료에 과연 효과가 있어 강단에 복귀해도 될 만큼 상태가 호전되었는지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그 문제가 확실히 해결되었다는 것이 확인되지 않는 한 그 병적 증상이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또다시 그런 강한 충동을 느낄 때 신앙 양심이나 윤리적인 의지는 완전히 무력해지기 때문이다.


그의 설교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체험한 내면세계에서 우러나오는 겸비한 자세와 애통하는 심령의 울림이 없다. 영적인 분별력이 있는 이들은 그의 설교가 여전히 가볍고 피상적이며 순결한 영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쉽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들은 설교에서 그는 하나님이 계속 치실 때 완전히 부서져야 한다며 회개한 자 같은 멋진 포즈를 취하나 그 말씀이 자신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말씀인 줄 알고 있는지 매우 의심스럽다.

그를 두둔하는 글을 쓴 이는 전 목사가 하나님의 은혜로 설교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지금 하나님께서 사용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논리이다. 이것이 교인들이 빠지기 가장 쉬운 함정이다. 교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은 설교의 은사가 탁월할수록 교인들을 감동시키는 위력이 크기 때문에 더 고차원적으로 자신을 경건하고 영성이 풍성한 이로 가장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교인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 있다.

그러므로 성화의 은혜 없이 설교의 은사만 가진 사역자는 더 깊은 파멸의 수렁에 빠질 수 있다. 그가 하는 거룩한 일이 그를 더욱 타락하게 만든다. 거룩한 것에 타성이 붙어 그에 대한 모든 경외심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도무지 두려워하지 않는 목사가 된다. 그래서 상당한 설교의 은사에 참여했던 자들 중에서 도저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완악해지는 이들이 나올 수 있다. 주님은 휘어진 막대기도 사용하여 당신의 자녀들을 유익하게 하신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사용하신 후에는 버리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존 오웬을 비롯한 개혁주의 신학자들은 성화의 은혜 없이 설교의 은사만 받아 목회 사역을 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런 이들도 상당한 성경 진리와 신학적인 지식을 터득하여 남들을 잘 가르치며 탁월한 설교의 은사를 받아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유익을 끼치기도 한다. 그러나 남에게 전파하고 자신들은 결국 버림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목사들의 두드러진 특징은 사역의 은사와 능력은 나타나지만 삶과 인격에 열매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치유가 필요한 목사를 강단에 다시 세워 말씀을 듣는 교인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인가? 그런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무엇을 배우고 본받겠다는 것인가? 목사의 설교 자체보다 그 설교를 살아내는 목사의 인격과 삶이 교인들에게 더 크게 말하며 더 큰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혹자가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도덕적인 연설을 할 때는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 청중이 알고 있는 그의 삶과 인격이 더 큰 소리를 내며 듣는 이들의 귀에 윙윙거리기에 그의 말은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그의 모순된 행위를 알면서도 그의 설교에 은혜를 받는 이들은 목사의 연약함에 무궁한 긍휼을 가진 초인적인 영성의 소유자들인가? 아니면 분별력이 없고 윤리의식이 아주 결여된 사람들인가? 전 목사의 설교를 들으며 교인들은 연신 깔깔대며 웃어댄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 웃을 상황이 아닌 것 같은데도 말이다. 전 목사의 범죄로 인한 한국교회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새교회의 개척으로 한국교회가 다시 혼란스러워진 상황 판단이 도무지 안 되는 사람들인가? 통곡을 해도 시원찮은 판인데 말이다.

그들 중에는 애써 전 목사가 그런 형편없는 인간은 아닐 것이라고 믿으려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혹시 그들 중에는 전 목사와 같이 삶과 신앙이 따로따로 노는 것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지는 않을까? 토요일 저녁에 음란한 짓을 하고 주일에 예배드리며 회개하고 용서받았다고 기뻐하며 깔깔거릴 사람들 말이다. 그리고는 개가 토한 것에 돌아가듯이 다시 그 짓을 반복할 죄 중독자들이 혹시나 있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신앙 양심이 좀 켕기기는 하지만 그런 위대한 모본을 보이는 목사를 보며 다시 위로를 받고 담력을 얻어 한 가닥 남은 양심의 소리마저 죽여 버리고 죄 속에서 평안하게 사는 이들이 혹이라도 배출되지 않을지 지레 겁이 난다. 물론 이것이 단순한 기우에 불과하기를 바라지만, 만약 그럴 가능성이 실재한다면 앞으로 그 교회는 홍대 앞을 누비며 성적으로 문란하게 사는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회개하지 않고도 기독교인 행세를 하며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좋은 안식처가 될 것이다.

혹자는 너무 지나치게 그 교인들을 폄하한다고 발끈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그렇다는 것이 아니고 가상의 문제를 지적한 것뿐이다. 그런 위험에 대해 일침을 가하기 위해 다소 거친 표현을 사용한 것을 양해해 주기 바란다. 그 교회에는 전 목사가 재기하는 것을 진정으로 돕고 싶은 순수한 교인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 목사의 미심쩍은 회개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그런 의혹의 꼬리표가 그들을 계속 따라 다닐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전 목사를 따르는 교인들이 그를 진정으로 위한다면 지금이라도 그가 확실한 회개와 회복의 과정을 밟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것이 전 목사와 많은 영혼들을 참으로 살리는 길이다. 이제 전 목사의 문제는 단지 삼일교회와 새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었다.

전 목사는 더 지체하지 말고 피해자들에게, 삼일교회 교인들에게, 그리고 한국교회 앞에 깊이 사죄하며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가 불편한 진실을 고백한다고 해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 오히려 회복과 축복의 길만이 열릴 것이다. 그러면 한국교회의 모든 목사와 교인들이 뜨거운 사랑과 용서의 포옹으로 그를 끌어안을 것이며 그의 복귀를 응원할 것이다. 만약 전 목사가 온전한 회개와 회복의 과정을 거친다면 그는 하나님께 더욱 귀하게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비참하게 실패한 죄인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파격적인 은혜의 부요함을 밝히 드러내 실패한 수많은 교인에게 큰 회복의 희망과 위로를 안겨 주는 상처 받은 치유자의 역할을 탁월하게 감당할 것이다.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베스트셀러로 잘 알려진 고든 맥도날드 목사도 성적인 범죄를 범한 후 자신의 죄를 모든 교인들 앞에서 고백하고 공직에서 물러나 3년에 걸친 깊은 자숙과 회복의 과정을 밟았다. 그 후에 그는 그 전보다 훨씬 더 영적으로 깊이 있고 풍성한 사역을 하게 되었다. 실패한 이들에 대한 긍휼과 연민으로 가득한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글과 설교로 실패한 이들을 위한 주님의 놀라운 은혜와 자비를 전하는 진정한 상처 입은 치유자로 거듭난 것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그를 아끼는 많은 이들이 그가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어 주었다.

우리도 그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되 그의 잘됨과 회복을 바라는 깊은 사랑과 긍휼로 권면하며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이런 비판도 그런 노력의 일환이 되어야 한다. 전 목사에게 진정한 멘토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교회 지도자들로 구성된 모임을 통해 전 목사의 회복을 구체적으로 돕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그의 실패를 거울 삼아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깊이 회개해야 할 것이다. 전 목사는 우리 목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우리 중 누가 전 목사에게 먼저 돌을 던질 수 있을 만큼 하나님 앞에 순결하겠는가? 우리 모두 정도에 차이는 있지만 실패한 죄인들이다.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 모두 공동의 책임 의식을 가지고 그의 죄를 내가 비판할 남의 죄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들의 죄이며 우리가 함께 짊어지고 통회해야 할 죄로 여겨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우선적으로 우리 목사들의 책임이다. 강단에서 말씀의 능력이 떠나고 교회가 영적으로 이렇게 피폐하게 된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목사들이 하나님 앞에 성결함과 순전함을 잃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목회를 추구함보다 거룩한 명분으로 포장된 목사의 종교적인 야망에 사로잡혀 이 땅에서의 성공과 영광을 좇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세상과 교인들을 향해 회개하라고 외치기 전에 우리 목사들에게서부터 뼈를 깎는 각성과 통렬한 회개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그것만이 침몰해 가는 한국교회를 살리는 길이다. "주여 우리 실패한 목사들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소서! 그래서 당신의 교회를 새롭게 하소서!"

박영돈 / 고신대 신학대학원 교의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