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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개오작은교회 김경재 원로목사(아름다운 이야기) / 2012-11-05

2013-08-02|조회 389
순수한 예배, 자발적 헌신으로 생동하는 교회
 
주말이라 북적거리는 홍대 거리를 지나 한적한 길로 접어든다.
은행나무 가로수마다 은행이 실하게 달려 있다.
공사를 전문으로 한다는 가게 앞에 모여 있는 세 명의 아저씨들이 한 마디씩 한다.
 “요즘 교회들이 다 기업형인데 저 교회는 진짜 교회 같아.” 묻지도 않은 말들을 던지는 아저씨들에게 “왜요?”라고 물었다.
 
 “저렇게 음식 싸가서 서로 나누고 이웃도 돌아보고 해야 진짜지.”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눈을 들자 ‘삭개오작은교회’라는 작디 작은 간판이 바람에 흔들린다.
마치 기자를 반기는 조막손처럼.

삭개오작은교회를 설립한 김경재(한신대 명예교수, 삭개오작은교회 원로목사) 목사가 생각하는 작은 교회란 뭘까.
“저는 대형 교회의 수고와 장점을 인정하면서도 대형 교회가 그리스도교의 복음의 본질을 가리고 훼손한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대한 작은 목소리이지만, 교회가 물량적인, 건물적인, 사람의 머릿수로 진가가 결정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싶어요.”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온다.
세리장이자 부자였던 삭개오. 예수님을 보기 위해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던 삭개오. 자신의 집에 유하시는 예수님께 가진 것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겠다 약속한 삭개오. 당시 세리장으로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그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는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유하시겠다 하자 뭇사람들은 ‘죄인의 집’에 머물겠다는 예수님을 두고 수군대기까지 했으니.

김경재 목사는 “기본적으로 지구촌이 하나의 생활권이 되다보니까 하나님 눈으로 볼 때 ‘나는 깨끗한 돈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 할 사람이 하나도 없다고 봐요. 구조적으로 세계의 부정과 불의에 얽혀져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있단 말이죠. 삭개오라는 인물로 상징이 된다고 봤어요.
 
삭개오가 로마제국이라고 하는 당시 힘으로 모든 것을 억압하고 재편하고 정치적으로 다스리는 제국의 식민지의 한 국민이었으나 생존 자체의 일차적 요청으로 로마의 세금징수원이 되어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은 자본주의 경제 체계가 물론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그것이 갖고 있는 부정적이고 악마적인 측면에 눈감고 살아왔다는 것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것 아니겠어요.”라며, 그런 면에서 나는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이고 나는 수탈당하는 자이면서도 그 누군가를, 아프리카나 제3세계의 고난과 빈곤의 동료, 인간 형제들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간접적인 의미에서 가담하고 있는 죄인임을 인정하자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종교적 예배가 19세기 유럽의 부르주아적 기독교가 범했던 자기기만의 자기만족적인 유럽적 백인 문화의 가치, 곧 하나님이 원하는 것이라고 등식화하면서 심지어 그것을 빌미로 식민지 쟁탈을 합리화하고, 식민지 국가에 자기들의 가치관을 폭력적으로 강압했던 것을 반복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현대 21세기 한국 교회가 실질적으로 삭개오와 같은 존재라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삭개오가 현실적으로는 로마제국 구조 속에서 밥 먹으며 세리 짓을 했지만 그것이 인간의 본래적 모습이 아님을 깨닫고, 본래적인 삶을 찾아서, 예수를 찾아서 목말라 했듯이 우리는 그런 길을 가야 합니다.
 
” 삭개오작은교회라는 이름 속에 녹아 있는 설립정신이다.
그래서 김경재 목사는 ‘내가 21세기의 삭개오’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올 수 있는 삭개오작은교회를 창립했다. 벌써 7년 전의 일이다.

2006년 1월 첫째 주일, 교회의 모임 장소를 ‘김옥길 기념관’(이화여대 후문 건너편, 서대문구 대신동) 지하 예배실(이화홀)로 정하고 모이기 시작했다.
2008년 12월에는 지금의 마포구 서교동 씨알회관으로 예배 장소를 옮겼다.

가난한 교회 일곱 개를 개척하겠다는 서원
19세 그 예민한 때 광주 무등산에 올라 세상을 보았다.
가까이서 보면 커다랗게만 보이던 건물도 성냥갑처럼 조그맣다.
 광주고등학교 3학년. 친구들은 의대, 법대, 상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린 김경재는 삶과 죽음,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있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성령께서 저를 추동했다고 볼 수 있죠.
 당시 무등산 꼭대기가 기도의 제단이었어요.
성냥갑같은 건물을 보면서 아무리 돈 벌고 사업을 해도 그런 건물 열 개 세울 것 같지는 않았어요.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인데 저런 눈에 보이는 건물을 위해 살고 싶지도 않았고. 영원히 쇠하지 않는 복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죠.
그리고 가난한 교회 일곱 개를 개척하겠다고 서원 비슷하게 다짐도 했구요.
돌이켜보면 하나님은 제 서원을 다 이루어주고 계신 것 같아요.”

목사가 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부교수가 되던 34세 무렵, 목사가 될 사람을 가르치는 교수는 모두 안수를 받으라는 규정이 생겼다.

“안수 받은 지 근 40년이 돼가요.
지금 돌이켜보면 저의 건방진 서원을 최소한 형식적으로라도 지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 같습니다.
 교수를 하면서 짧은 기간 개척교회를 섬길 기회가 있었어요. 강원도 횡성 복지교회, 의정부 의정부교회, 은진교회 등 그렇게 2,3년 섬기다 전임 전도사라도 모실 수 있는 형편이 되면 떠나게 되고. 저는 학교에서 급여가 나오니까 부담없이 교회가 자리잡을 때까지 섬길 수 있었던 거지요.
그래서 큰 틀 안에서 삭개오작은교회를 개척하게 하신 것도 그 서원을 들어주시느라 그랬구나하고 느낍니다.”

교회는 세상에 위치한 하늘 기관
삭개오작은교회에는 운영 기본 원칙이 있다.
 
 첫째, 교회 소유물로서의 건물 교회당을 갖지 않으며, 유급 전담 목회자를 모시지 않는다.
 
교회란 건물이나 제도적 직제가 아니고, 성령 안에서 모이는 신도공동체 자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임을 믿는다.
 
둘째, 성경말씀 공부와 진리탐구에 열성을 다한다.
복음의 진리로부터 오는 맘의 평화와 축복을 누린다.
열린 신앙 자세를 가지고 기독교의 다양한 신앙전통들과 이웃종교로부터도 배우기를 경계하지 않는다.
 
셋째, 헌금은 장소 사용료를 제외한 전액을 국내외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만 사용한다.
순수한 예배, 자발적 헌신으로 생동하는 교회
넷째,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문’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하나님의 나라가 땅 위에 임하도록 힘쓴다.
 
다섯째, 평신도 중심의 교회를 지향하고, 교회 살림과 운영은 초대교회 일곱 집사 선출 정신을 본받아 7명 이내의 교회운영위원회를 구성하여 순환당번제로 봉사한다.
 
여섯째, 교회의 물량주의와 허례허식을 경계하고 신앙의 순수성과 단순성을 중시한다.
 
일곱째, 삭개오작은교회의 봉사선교(Diakonia Mission)를 중점적으로 실천해 가기 위하여, ‘삭개오 선린회善隣會’와 진리탐구를 목적으로 하는 ‘삭개오 연경반硏經班’을 둔다.
 
 여덟째, 헌금이나 교회출석을 온전히 신도의 자발성에 맡긴다 등이 그것이다.
삭개오작은교회의 이런 정신에 반해 출석하는 사람들이 50여 명. 제법 멀리서도 찾아와 스스로 봉사하는 이들이 많다.
7년이 지난 시점에서 약간의 변화도 준비하고 있다.

“초안을 만들었지만 고정된 것은 아니라고 봐요. 교회 구성원들의 멤버십에 따라 언제든지 합의를 하면 바꿀 수도 있지요.
 지금은 원로 목사인 저와 KNCC에서 일하는 이훈삼 목사, 박연길 목사, 공은혜 전도사가 무급으로 섬기고 있지만 앞으로는 안정된 예배처소와 담임목사 청빙 문제를 가지고 논의를 해야 할 때라고 봅니다.”
그러나 초심은 변하지 않았다.
 “예배만큼은 순수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 교회 신앙지표 첫째가 ‘예배는 정결함과 순수함으로’거든요.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해 인간이 북치고 장구치는 종교기관으로 변질하지 않기를 바라죠.
교회는 인간의 이익을 위해 만들어가는 종교 주식회사가 아닙니다.”

김경재 목사는 스승 장공 김재준 목사의 말을 인용했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늘의 기관, 신령한 영적 공동체라고 하셨죠.
그걸 구성하고 현실적으로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조직도 있고 제도도 있는 것이지만 교회는 세상에 속하지 않는 하늘 기관이라고. 이것이 제일 중요한 자각입니다.
그래야 자꾸 세속화하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가능하거든요.
 세상 성공의 잣대로 교회를 보지 않게 되지요.”

작지만 작지 않은 교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말씀을 팔아 인간의 욕심을 채우는 일부 큰 교회보다 세상 성공 잣대가 아닌 하나님 보시기에, 낮은 자가 보기에 좋은 교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삭개오작은교회를 나오며 그 바람이 헛되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