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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2013-04-05

2013-08-03|조회 371

목회자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작은 교회를 살려야 한다.



신학교를 졸업하면 모두 목회현장으로 나간다. 부목사나 교육목사 혹은 파트타임도 있을 것이다. 유학이나 아주 적지만 기관이나 선교기관에 사역을 하기도 한다. 아예 목회와 상관이 없는 일도 한다. 한번도 통계를 낸적이 없지만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어려운 이들은 임지를 얻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가고 싶은 곳을 가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채용해 주지 않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란 얘기다. 이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계속 지원하는 데도 채용이 안된다면 구조의 문제다. 그것은 졸업생 보다 적은 임지로 결국은 총회의 신학교육과 신학교는 구조적인 실업을 강요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사지로 내몬다고나 할까?

개척도 이제 개인이 하기는 어렵게 되였다. 높은 임대료와 내부장식도 문제지만 우선 개척을 하려면 국내선교부에서 부부가 개척훈련을 받아야 하고 임대 보증금 1억이상과 그것도 개인이름이 아니라 노회 국내선교부와 공동계약을 요구하고 있다( 개척하다가 힘이 드니 개인적으로 양도하거나 노회도 이탈하는 부작용이 나자 노회가 골욕지책으로 만든 제도) 높은 임대로도 문제지만 이제는 도시고 농촌이고 더 이상 개척할 지역도 없다는 것이 현실이다.

그것은 우리 교단만의 문제가 아니기에 그렇다. 전반적으로 목회자의 과잉공급이 되고 있다. 그러기에 임지와 인력에 대한 수급조절 없는 신학교육은 군소교단들이나 하는 것(교세를 늘리기 위해서는 목회자를 많이 만들면 먹고 살기 위해서 어떻게 하던지 교회를 세울 것이고 그러면 교단의 기반이 된다는 전력) 이다.

거기다가 합동측이 선점한 야간 신대원 과정을 개설한다는 얘기도 있다. 그런 요청이나 필요가 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결과에 대해서는 연구를 많이 해야 한다고 본다. 앞으로는 목사가 총회나 노회의 도움을 기대하고 무엇을 하는 것은 힘들게 되였다. 전에도 선배들이 우스게 소리로 말한 "나벌어 나 먹기" 기 현실화 되였다.

그렇기에 장차 총회나 노회가 목회자의 인사권에 개입하고 목회자 개인신상의 테이타 베이타화해서 주도권을 가지지 못하고 지금처럼 개교회가 인사권을 행사하는 한 이 문제는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이제 신학교를 졸업했거나 졸업을 하고도 사역이 막막한 목회자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할 것을 제안 해본다.



요즘 한국교회 풍경

최초 강남의 대표적 교회인 사랑의 교회가 건축에서의 특혜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가운데 이번에는 오정현 목사의 박사학위 논문 대필 의혹 문제가 터져 나왔다. 거기다가 언론들의 중계방송식의 폭로와 개인적인 서신들과 표적기사가 전 사회적인 문제로 비화시켰다. 이미 합동측의 초대형 교회인 삼일교회는 목회자가 성윤리 문제로 제자교회는 헌금유용, 분당제일교회도 재정의 임의 사용과 건덕상의 문제로 분쟁과 소송중이였다.

이번에는 그동안 묵인되였던 박사학위 논문대필 문제다. 본지는 잘못은 분명하지만 아직은 한국적인 상황속에서 그동안 거의 용납되여 왔던 문제였지만 이번에 오 목사가 억울하지만 속죄양이 된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이 문제가 이렇게 비화된 이면에는 논문 대필보다 더 중요한 오 목사의 진실하지 못한 발언과 이에 실망과 교인들과 당회의 잘못된 대처는 교회의 분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우기 부목사 고직한 선교사와 고 옥목사의 아들 옥성호 집사의 개임 그리고 뉴스엔죠이가 발빠르게 집중적으로 보도한 덕이다. 이것에 대한 평가는 훗날 될 것이지만 공이 라면 공이고 화라면 화다.

한국 기독교의 인터넷 신문의 지평을 열고 가장 비중있으며 해외판도 갖고 있는 뉴스엔 죠이 김종희 대표는 최근 글에서 제자교회로 부터 매월 50만원 사랑의 교회로 부터도 50만의 지원을 받았는데 이 사건들을 보도한후 끊겼다고 한다. 이것도 문제라고 본다. 특별한 목적없이 대형교회나 개인들로 부터 돈을 받으면 반드시 그 값을 해야 할 것 인데 그런 의도는 아닐 지라도 언론들은 돈이 끊기니 보복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또 한 사건에는 찬반의 의견이 있는 데 자기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하는 신문에 후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이 돈을 내는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후원을 마다 할 필요는 없지만 그런 식으로 언론이 생존을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http://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193711(김종희 대표의 글)

합동측의 반란이 될까?
가기다가 비교적 말을 아끼던 복음주의권의 시니어들중 1세대인 학원복음화(학복협) 전 상임대표 이승장 목사가 선배 목회자로서 후배 오정현·전병욱 목사를 책망하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글을 2월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 목사는 "오정현·전병욱 목사가 자기 영광을 구하고 세속 가치를 추구하며, 거짓된 쇼맨십으로 사람들을 자기에게로 인도하려는 수법들을 보았지만 책망하거나 경고하지 않았다. 무책임했던 죄를 회개한다" 고 했다.

이 목사는 두 목사의 문제가 후배들에게 잘못된 길을 따르게 한 선배 목회자들의 잘못이라고 했다. 그는 "오정현·전병욱 목사에게 경쟁심과 야망을 심어 준 복음주의 4인방 옥한흠·이동원·하용조·홍정길 목사의 초대형 교회 정책을 비판하지 못했다. 오히려 복음주의 연합 사업에 후원해 준 4인방을 은인처럼 고마워하며 우정을 즐기기만 했다"면서 반성했다.

이승장 목사는 1967년부터 40년 넘도록 청년 사역에 힘써 왔으며, 1997년부터 2006년까지 10년 동안 학복협 상임대표를 맡았다. 1980년대 로잔언약을 국내에 처음 소개하고 사회 참여적 복음주의를 확산시켜 온 주요 인물이기도 하다. 현재 성서한국 공동대표, 예수마을교회 은퇴 목사로 섬기고 있다.



더우기 고 옥한흠 목사에게 오정현 목사를 적극 추천했던 홍정길 목사는 "대형교회의 시체썩는 냄새" 라는 내용으로 이 사건에 대하여 우회적인 비판을 하였다. 이 일들은 놀라운 고백이며 발언이다.

바라기는 이 사건을 통하여 합동측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복음주의 진영이 지속적으로 개혁의 목소리를 내 간다면 총회의 문제는 문제대로 갈 것이지만 건강한 세력들의 세력화와 발언의 공간이 넓어지게 될 것으로 본다. 그동안 외롭게 고분분투하던 기윤실이나 성서한국 정감운동등 진보단체에게 큰 힘이 될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번영신학이나 왕의 기도, 귀족적 제왕주의 목회에 대한 종언을 고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우리들의 얘기를 한번 해보자

매년 신학교의 졸업생의 증가가 가져올 일
예장 통합만 해도 전체 7개의 신학교에서 약 800명 이상의 졸업생이 나오고 매년 목사고시 지원자는 약 1,500명이 된다. 그것도 모자라 돈벌이에 혈안이 된 신학대학들은 총신대에서 처음으로 사이버대에 이어 야간과정을 신설했고 PCK도 검토단계에 들어갔다고 한다.

작년 통합 97회 총회에 보고할 교세통계의 자료에 의하면 2011년 말 기준으로 전체 교인수(교회 등록 인 기준)는 282만 2125명으로 전년도보다 186명 줄었다. 통합 교단은 2001년 부터 교세 통계를 전산화 했는데 지난 10년간 교인 수가 매년 평균 5만 2371명(평균 증가율 2.06%)씩 늘었었다.

그러나 전체 교인 수는 줄었지만 교회와 목사 수는 매년 증가세를 이어갔다. 지난해 말 현재 예장통합 소속 교회수는 8,305개로 전년도 대비 143개가 늘었다. 목사 수는 1만 6257명으로 직전 년도 보다 506명 증가했다. 그 외 목사 안수를 기다리거나 사역하는 교역자 숫자가 약 5천명이나 된다. 이 통계를 보면 교회는 8천개에 목사가 1만 6천으로 한 교회당 두명의 목회자가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모두가 고용되지 못하고 있다. 무임목사의 수는 한번도 통계에 잡힌적이 없지만 약 1천 명 이상 될 것으로 보인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6433871&cp=du)

예장 통합의 현실

이제 한국사회의 인구는 2020년을 기점으로 하향 곡선을 그릴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도시의 개발과 주택은 늘지 않을 것이고 학교는 통폐합을 하거나 축소될 것이다. 교회들의 현실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전국에 교회가 없는 곳이 없을 지경이 되었고 농촌이나 미자립교회도 생활비 평준화로 목회자들은 임지를 거의 이동하지 않고 은퇴시 까지 가고 있다. 미자립교회라도 감사해야 할지 모른다.

최저 생활비 지원해주고 설교할 강단과 집주고 차주고 먹을 것 주는 것만도 감사한 일이다. 불쌍한 것은 임지가 없는 임목사다. 그들의 처치는 한번도 공론화 된 적이 없지만 온 가족이 알바로 흩허 지고 목회자로써의 자존감은 추락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 부터 이런 문제를 진단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결국은 모두가 살자고 하는 목회도 비신자나 전도환경 때문이 아니라 동역자들 때문에 목회전선이 될 것이다.



임지의 경쟁은 지금보다 헐씬 더 심해질 것이고 결국은 1인 목회 세습도 옛날 얘기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중직자 자녀들의 목회지원이 늘어나면서 목사나 장로 집사 권사의 자녀들로 세습되는 중직자 가계 세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교단이 그마나 2013년의 총회 주제를 “작은자” 로 잡고 대형교회의 작은 자이에 대한 돌봄과 사랑을 기대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이 아니다. 이나마도 총회장이 바뀌면 그 기조도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아무도 현장의 절박한 목회자들의 처지와 진로를 고민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신문에서는 우리주변에서 대안으로 아래와 같은 작은 교회들이 많이 생겨나기를 소망하는 데 무임목사 전도목사들의 자리의 출구가 되기 때문이다. 지금 중대형교회라고 해서 목회자들의 고용을 더 많이 하는 것도 아니라는 조사가 나왔다. 대형교회 일수록 교역자들은 더 혹사 당하고 있다.

예을 들어 교인 200-300명 교회에는 평균 부 교역자 2명이 고용된다면 3,000명 이면 15-20명은 되야 한다. 그리고 30,000명이면 100-200명 이되야 된다. 그러나 그렇치 못하다. 대형교회 혹은 교회의 성장이 담임목사의 복지 혜택과 부요에는 기여할지 모르지만 다른 목회자들에게는 아무런 도움이 안되고 경쟁구도만 강화되고 있다.

“교회 대형화에 가속도 붙었다” 는 모 기독교 언론 기자의 분석
대형 교회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 각종 교계 연합사업은 물론이고 절기 연합예배와 사회복지, 대외적으로 보여지는 사회와의 소통도 대형 교회가 좌우한지 오래다. 일부 교회는 이미 교단의 영향력을 넘어섰다는 말도 나온다.

한 교회의 눈치를 보느라고 쩔쩔멘다. 초 대형 교회의 영향력 확대는 이미 앞 다투어 방송사 설립이나 미디어를 통한 이미지 재고나 홍보강화를 수단화 하고 있다. 가장 최신 방송 송출 방식인 IPTV에 가장 처음 진출한 기독교 IPTV인 C-채널 TV는 명성교회가 최대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

또 이미 FGTV를 운영해온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최근 Good TV(전 C3TV)를 인수해 방송 지평을 넓혔다. 온누리교회는 이미 2000년 부터 케이블 방송인 CGNTV을 통하여 세계로 그 채널을 운영하고 있다.

방송선교의 명분을 내세운 대형 교회들의 미디어 진출은 교세 확장은 물론, 교계 여론뿐만 아니라 대 사회적 이미지 형성의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다. 최근 국내 대형 마트들의 SSM(기업형 슈퍼마켓)을 통한 골목상권 장악 논란이 뜨거운데 대형 마트가 입점하는 순간 인근 지역 상권은 마트로 흡수되듯이 이러한 대형교회는 작은교회 임대교회를 잠식해 간다. 능력이 없고 실력이 없으며 기도가 부족하거나 교인들의 열심히 없어서 그렇다고만 말할 수 있을 까?



최근 교회선택 기준의 변화

모 언론 보도에 의하면 이 같은 변화는 국내 교인들이 교회를 선택하는 기준도 그 변화에서 나타난다. 교회 선택에 있어서 과거 교단과 전통을 중시했다면 이제는 편의성과 교회 이미지를 중시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바꾸는 원인 가운데 이제는 교단이나 교파가 그 기준이 아니며 교회의 명망성과 편의성(주차나 구성원)이라는 요인에 의해 선택되고 있는 추세다. 대형 교회중 최근 지교회를 분립하는 시도는 당연한 것이지 칭찮받을 일은 아니다.

그중에 대표적으로 여의도순복음교회는 20개의 지역 지성전을 분립했다. 이 분립을 통하여 과거 78만 명의 교인들이 34만으로 줄었다고 밝힌다 있다. 지난 2008년 높은 뜻은 뜻 숭의교회가 하나에서 넷으로 분립했다고 김동호 목사는 자랑을 하지만 그 내용은 할말이 많다.

합동측의 잠실중앙교회도 개척 당시 출석교인 1,500명을 넘으면 분립 개척한다는 원칙을 지키고 향상교회를 분립시켰다. 그런 헤택은 몇사람이 입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대형 교회들은 초대형 교회나 브랜치 교회를 꿈꾸며 지교회 늘리기와 교회 건축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거기다가 아직도 대다수의 젊은 목회자들은 이런 대형교회의 열망을 꿈꾸며 그런 목회기술과 열망을 키우는 세미나만 쫓아다니고 있는 데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일로 자기비하와 학대만을 가져올 뿐이다. 이것은 기도가 부족하거나 게으르거나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먼져 자신의 눈높이를 낮추고 목회성공의 꿈을 현실화 하라 Vision(희망)이 아닌 Degire(욕망)에 포로가 되지 말아야 한다.

개척할 곳은 점점 줄어들지만

지금 기존의 교회는 포화상태이다. 더 이상 개척이 힘들어 진 것은 높은 임대료도 문제지만 웬만한 곳에는 모두 교회가 있고 교인들도 높아진 주거환경의 여건으로 인하여 여건이 준비된 대형교회를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더 이상의 교회개척은 의미가 없고 불필요한 것인가? 만약에 기존의 교회가 지금 우리사회나 주민들의 요구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만족을 주고 그 해결을 위하여 일을 하고 있다면 모르나 지금 그렇치는 않다. 새로운 개종 보다는 양빼가기 전쟁이다. 개 교회는 아직도 예배와 전도 건축 그것에서 진나아가지 못하고 있. 좀 낳다는 곳은 봉사나 구제 선교정도이다.

그렇기에 우리사회의 날로 발전하고 다양화하는 시민적인 요구와 아래로 부터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그것 이상의 것을 담아내는 교회들이 필요하다. 그것은 첫 번째 일은 우리 목회자들이 눈높이를 낮추는 길이다. 그리고 중대형교회가 좀 더 동역자들의 고용의 기회를 늘리기 위하여 페이를 하향평준화를 해야 한다. 전임에서 파트제를 늘리고 협력목회 공동목회도 시도해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러나 그것도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다. 지금 임지가 없거나 새로운 교회 공동체를 꿈꾸는 변화의 열망이 있다면 작게 시작하고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 삭막한 도시를 마을로 만드는 일에 도전해보기를 바란다. 과거 우리의 마을은 도시에 나가서 일하고 지치고 피곤한 아들 딸들을 받아주고 먹이고 회복하게 해준 곳이다. 그 마을이 사라지고 삭막한 도시로 변화여 경쟁과 개인화를 추부이고 있다.

정성진 목사가 주도하는 작은 교회 살리기 운동

작은 공동체를 통하여

교회가 민중의 들의 집이 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주민들의 현실과 문제들을 찾아내고 그 아픔을 치유하고 지역의 시민단체들과 같이 하는 해결하기 위한 대안공동체가 되야 한다. 그런 시도들은 예장뉴스에 소개된바 있는 부천의 이원돈 목사(새롬교회, http://www.facebook.com/wondon?fref=ts) 나 염리동 마을 이장 출신 홍성택 목사(아름다운 교회, http://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01152582022)의 시도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이런 정보와 사례들을 모아야 한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메야 보배” 라고 하듯이 그 많은 시도와 경험들을 모으려고 한다.



최병성 목사의 길위의 십자가

새로운 내용들을 담을 교회을 주목하자

* 무한성장의 패러다임의 유혹을 이겨내고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작은교회
* 교회의 높은 임대료를 해결하고 주민과 소통하기 위한 자비량 카페교회
* 주민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애환과 고민을 듣고 기도하는 생활교회
* 지역의 난제들을 주민들과 함께 보고 해결하기 위하여 일하는 주민교회
* 복음의 가치들을 우선으로 여기며 배우고 확신한 것을 추구하는 배우는교회

* 비슷한 생각과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신앙과 삶을 일치하는 공동체교회
* 지역 특성인 비정규직 노동운동과 주민운동의 중심과제를 끌어 않는 현장교회
* 기성 교회들이 외면하고 감당할 수 없는 분야의 선교를 꿈꾸는 틈세교회
* 다문화 가족들은 보듬고 온 세상의 친구들이 되기 원하는 무지개교회
* 일하는 사람들의 애환과 희망을 바라보며 함께하는 노동교회

* 땅의 사람들의 문제를 왜곡하지 않고 농민들의 눈으로 바라보는 흙의 교회
* 귀농과 살림을 꿈꾸며 농촌의 새로운 희망을 전하는 상록수교회
* 생명죽임의 시대에 온 생명의 가치를 위하여 일어서는 생명길 교회
* 젊은이들의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원하는 청년교회
* 아직도 미완의 혁명 양성평등을 꿈꾸며 세상으로 나가는 여성교회
* 교회자체의 생존이 아니라 함께 일어서기를 원하는 협동하는 조합교회

* 문화 예술 전문인등 현대를 이끄는 아이콘인 IT를 기반으로 SNS 교회
* 점점 고령화 되가며 소외받는 노인세대들을 돌보는 실버목회
* 장애인등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며 함께 살아가는 가정교회
* 영감있는 찬양과 헌신을 꿈꾸기 위하여 열린예배를 특화하는 찬미교회
* 산업화 양극화로 인하여 상처받은 영혼들의 내적치유를 꿈꾸는 힐링쳐치

이와 같은 교회를 꿈꾸며 이미 시작을 한 분들의 경험과 공과를 찾아내야 하고 서로 공유해야 한다.
더 이상 예배만 드리는 공간에서 지역을 의식하고 자기 소신의 공동체로의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 말은 슬프게도 이제 더 이상 목사가 공채형식으로 자리을 이동하는 일은 점점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제다. 과거는 작은 교회에서 열심히 목회를 하다가 조금 규모가 있는 교회로 이직이 가능했지만 이제 대형교회는 박사학위나 외국경험이 없이는 불가능하고 생활비 평준화로 인하여 심지여 농촌교회 조차도 거의 이동이 없다. 선배들의 은퇴만을 기다려야 하는 데 그 자리도 같은 노회가 아니거나 정보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제는 평생목회 한다라는 일념으로 가야 한다. 누구도 아무것도 책임져 주지 않는 한국적인 상황에서는 목회자는 교회는 자기생존과 밀접하다는 성서적 CEO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교회의 전망에 대하여 냉철한 분석과 주체적인 사고를 해야 한다. 막연하게 더 기도하고 더 노력하고 전도하면 된다는 낙관론에서 벗어나야 한다. 가족의 고통과 희생도 문제지만 더 이상 자기 학대식의 경건과 자포자기 보다는 현실적인 방안들을 연구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살아야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떻게든 살아나야 교회가 사는 시대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