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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보유량 1위, 인터넷 가입률 1위, 화장품 소비량 1위, 성형수술 1위, 보톡스 주사 1위인 국가

2008-06-27|조회 565



石準교수의 보드리야르 동행기
인사동 기와집...'휴대전화 보유 세계1위'

▲사진설명 : 9월 27일 용인 민속촌에서.전통 혼례식이 진짜인 줄 알고 구경하던 보드리야르는 “디즈니랜드식 재현에 잠깐 속았다 ”며 웃었다./석준 교수 촬영


프랑스 석학 장 보드리야르가 이달 초 일주일간의 방한 일정을 마치고 본국으로 떠났다. 그의 통역을 도와주고 서울 일정을 안내하면서 매일 그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색다른 체험이었다.

그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항상 머리를 맴돌았던 생각은 우리는 모순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선 방문 동기부터 일종의 모순이었다. 첨단 기술과 미술의 만남이 핵심인 미디어 아트 전시회를 기념하는 학술회의와 미디어와 첨단 기술이 인간성을 짓누르고 개성을 획일화시키는 주범임을 여러 일상 사례를 통해 경고하면서 이를 극복하기를 적극 주장하는 그의 사상은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왜 이런 어긋난 만남이 이루어졌을까?


아마도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실로 정의 내리기 힘든, 그러나 수없이 언급되는 단어 때문이 아닐까한다. 그는 한국 및 영어권 국가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 적어도 대표 주자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모더니티가 그 파격의 한계에 이르렀다고 믿었던 이들이, 그 한계 상황 속에서 느낀 자신들의 불안, 무질서를 알리면서 동시에 좀 더 새로운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포스트모던이라는 개념이 탄생한다. 기준이 되었던 규범과 이미지의 고정된 의미 작용이 무너진 이 때,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이미지가 존재함을 「시뮬라시옹」과 「시뮬라크르」라는 단어를 통하여 강조한 보드리야르는 구원자적인 존재로 떠오른다. 그러나 이에 대한 그의 대답은 단호하다. “나는 나 자신을 포스트 모더니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단지 남들이 나를 그렇게 칭했을 따름입니다. 프랑스에서는 포스트모던이라는 단어를 생경하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미디어아트, 포스트모더니즘, 보드리야르, 이 조합 자체가 하나의 포스트모던 현상이다.

그가 한국을 떠나기 전 날, 프랑스 대사가 베푼 만찬에서 대사는 보드리야르에게 한국을 이렇게 소개했다. “보드리야르씨, 한국이 어떤 나라인줄 아십니까? 인구 당 핸드폰 보유량 세계 1위, 초고속 인터넷 가입률 1위, 화장품 소비량 1위, 성형수술률 1위, 보톡스 주사 소비율 1위인 국가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두 도시는 서울과 상하이입니다.”한국은 더 이상 서구의 첨단 기술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는 개발 도상국이 아니라, 그들을 성큼 앞질러 미래로 나아가는, 그러나 이런 첨단 기술에 포획돼 스스로 포로가 돼버린 이상한 나라로 비쳐진다. 첨단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 준 부정적인 반작용의 폐해로부터 벗어나기를 주장하는 보드리야르에게, 세계화, 맥도날드화, 전산화만이 인간의 행복과 편리함을 제공하는 지름길이 아님을 역설하는 보드리야르에게 한국은 미국 못지 않은 호기심의 대상일 것이다.


보드리야르에게 서울은 그가 살고 있는 파리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뮬라시옹 이론을 적용시킬 수 있는 천혜의 도시이다. 한 나절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인사동의 민속품 상점을 둘러보고, 미로처럼 복잡한 골목길에 촘촘히 늘어선 기와집 중 한 곳을 들러 한국 음식을 맛보고, 미소짓는 얼굴로 다가와 ‘혹시 보드리야르 선생님 아니십니까’라고 인사하는 건축학도에게 악수를 해주고, 그 자신이 서울의 비벌리힐스라고 칭한 성북동을 거쳐서, 한약재로 뒤덮인 경동 시장 이곳 저곳을 경이에 찬 눈으로 사진을 찍은 후, 청담동의 한 와인 바에서 백포도주 한잔을 마시면서 행복한 얼굴로 “파리에는 이런 와인 바가 잘 없는 데”라고 여운을 남긴 보드리야르. 첨단의 현대와 반 근대가, 30분도 채 안 되는 시간과 30km도 채 안 되는 공간의 차이 속에 공존하는 서울은 거의 전 세계를 고루고루 방문한 섬세한 관찰자 눈에도 분명 놀라움의 대상이다.

이런 세계적인 석학이나 문필가들이 한국을 방문할 때 빠지지 않는 단골 질문과 그것을 접할 때 당황하는 모습.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국의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의 장래는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앎과 삶, 그들의 지식과 경험을 전달하러 오는 것이지 예언자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어떤 바른 길을 제시하고자 오는 것은 아니다.

보드리야르 역시 다른 방문객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또 놀랐다. 그의 대표적 저서중 하나인 「상징적 교환과 죽음」이 「섹스의 황도」라는 제목으로 번역되고, 강연장에 수많은 학생들이 그의 저서를 들고 사인을 받으려 뛰어들고, 유명한 영화 포스터 사진 작가가 “나의 예술 세계에 가장 큰 영감을 준 두 사람은 세르주 겡스부르와 바로 당신입니다”라는 말 등등에 그는 놀란다.

“세계화 덕분에 우리는 좀 더 편리하게 세계화를 비난할 수 있군요”라는 말을 남기고, 평생을 책 속에 파묻혀 산 노학자는 천진난만함과 지혜로움이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미소를 띤 채, 손을 흔들며 공항 문 안쪽으로 사라져 갔다. “당신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기수이며, 우리에게 당신의 글은 하나의 전형입니다’라는 식의 칭송보다 그를 더 기쁘게 한 것은, 인사동 여느 기념품점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흰색 명주 위에 색색 조각이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이어져 있는 몬드리안풍 작은 보자기였다.

(石準·홍익대 불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