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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브랜드 크리스천

2008-06-07|조회 210
소비사회와 똑 닮아가는 한국교회
<뉴스 엔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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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릭 프롬, 장 보드리야르 등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지엔피 만불의 시대는 소비의 시대임에 틀림없다. 소비의 사회에서는 물건을 구매하지 않는다!? 물건의 성능이나 품질을 보고 구매하지 않는다. 얼마나 튼튼하고 얼마나 오래 쓸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소비의 조건이 되지 못한다. 어떤 물건을 소비함으로써 나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소비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 즉 물건이 제공하는 이미지가 중요한 것이지 물건 그 자체의 쓰임새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벤츠나 비엠더블유(BMW)를 타는 사람은 그 자동차의 성능보다는 그 자동차가 풍기는 이미지를 타고 다닌다. 그럼으로써 그는 어떤 계급, 즉 남과 구별된 계급에 속해 있음을 과시한다. 따라서 이미지를 구매하는 소비사회에서는 브랜드(상표)가 중요하다. 품질은 거의 비슷해도 브랜드에 따라 값은 몇 배가 된다.

유명 브랜드가 제공하는 이미지는 가상현실을 창조한다. 가상현실은 피가 뛰고, 살이 느껴지고, 땀내 나는 살아있는 세계가 아니다. 현실에서 추상된, 그럼으로써 진정한 살아 있는 현실을 박제화한 그런 세계다. 먹고, 자고, 싸고, 사랑하고, 다투고, 고민하고, 깨닫고, 추락하고, 고양되는 삶의 일상의 소용돌이를 벗어난 유령의 세계요 허영의 세계다. 그러나 가상현실은 얼마나 교묘한지 진짜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우리를 사로잡는다. 그래서 가상현실을 영어로 '버추얼 리얼리티'(virtual reality)라고 말한다. 얼마나 진짜같은(버추얼) 현실(리얼리티)인지! 이러한 가상현실 속에서 피와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진짜 현실은 은폐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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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교회 역시 소비사회를 똑 닮았다. 이미지를 중요하게 여기는 점과 삶의 현실과 유리된 가상현실 속에서 허우적 대는 모습이 그렇다. 물론 한국 교회에서 중요한 이미지는 진실에 대한 통찰과 그것에의 참여에서 우러나오는 존재의 분위기 또는 존재의 품격 따위와는 거리가 멀다. 내가 얼마나 진리를 추구하고 있느냐, 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대형 교회나 소위 '잘 나가는' 교회에 속해 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깨달은 진리를 얼마나 삶 속에서 실천하고 있느냐,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어떤 프로그램에 참석하였는가가 중요하다.

'벧엘을 했느냐, 트리니티는 어떻고, 아니 크로스 웨이가 좋다던데, 아냐 티비씨 성서연구가 제격이야, 무슨 소리, 일대일 제자양육, 아무 교회 제자훈련 씨리즈가 그만인걸! 그걸 아직도 못뗐냐, 나는 벌써 두루 섭렵했다, 생활편까지.' 과시와 우열다툼과 경쟁을 위한 교회생활은 있어도, 삶의 진실에 진실하고자 하는 구도자적인 열망 따위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다. 진리를 깨달은 대로 살기 위해 자기 몸을 쳐서 복종시키는 그런 치열함 따위 역시 찾아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각종 세미나다, 성경공부다, 부흥회다, 참석하는 사람은 많지만, 예수의 정신에 온 영혼 물들이면서, 세포 하나 하나에까지 물들이면서, 기독교적으로, 그리스도적으로 살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에 매달린 사람들이 수두룩한 한국교회의 사회적 영향력은 미미하기 그지없다.

한국의 크리스천들은 불쌍하기 짝이 없다. 그들이 불쌍한 이유는 피와 땀과 눈물로 뒤범벅된 있는 그대로의 현실과 그 현실 속에 성육신한 예수 그리스도와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과 자유의 복음을 만끽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은 교단, 교리, 교역자들이 만들어 놓은 허깨비 같은 가상현실 속에서 허우적 대기 때문이다. 새로운 율법 속에 감금되어 옴짝달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현실을 떠난 종교적 가상현실 속에 유폐된 채 점점 창백한 유령을 닮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진실을 스스로 통찰하는 능력은 계발하려 하지 않고 그저 유명한 목사, 부흥사, 전도사가 떠멕여 주는 달콤한 사탕에만 중독되어 스스로를 유치하게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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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신문을 통해 노 브랜드 상품이라는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애들 옷도 한 벌에 50~60만원이나 하는 유명 브랜드 상품과는 달리 느 브랜드 상품은 값이 싼데도 품질은 훨씬 좋다고 한다. 과도한 장식과 광고에 드는 비용을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명 브랜드를 사용하는 값으로 지불해야 하는 로얄티도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70년대 중반 이후 프랑스에서 생긴 이런 경향이 요즘은 세계적으로 확장되는 추세에 있으며, 우리나라에도 작년에 노 브랜드 상품을 취급하는 곳이 생겼다고 한다. 반가운 일이다.

이런 노 브랜드의 물결이 한국교회에도 밀려들었으면 좋겠다. 이름하여 '노 브랜드 크리스천'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을 가리켜 '노 브랜드 크리스천'이라 할 수 있을까? 어느 유명 교단, 어느 유명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을 자랑하거나 그런 사실에 안도하기보다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고 정직할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애를 쓴다거나,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에 자부심을 느끼기보다는 성장한 만큼 선한 영향력을 사회에 끼치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면서 썩는 밀알이 되고자 한다거나, 어떤 세미나, 어떤 집회, 어떤 성서연구 프로그램에 참석하였네, 하면서 그것이 마치 좋은 신앙의 징표인양 자랑하기보다는 구도자적인 삶을 살아가기 위해 자기와의 싸움을 진지하게 해 나가는 기독교인을 '노 브랜드 크리스천'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가상현실 속에서의 과장된 이미지가 아니라, 삶의 현실 속에서의 진실한 품격이 우러나도록 힘쓰는 기독교인을 '노 브랜드 크리스천'이라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이민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