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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교회의 제자도와 한국교회

2008-06-07|조회 285
김경진 교수 vs 김상훈 교수

한국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제자훈련은 나름대로 한국교회에 많은 기여를 했다. 한국교회가 한 단계 더 나아가는 디딤돌의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급변해지는 사회환경 속에서 이제는 지금까지 밀고 왔던 제자훈련의 모습을 점검해 볼 시기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특별히 제도자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재고해 봄으로써 우리의 귀한 사역을 새롭게 할 때이다.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제자도의 모습은 어떠한지, 그리고 한국교회는 어떻게 이 시대의 유혹을 헤쳐나가면서 그리스도의 군사를 길러낼 것인가에 대해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 답해야 할 책임이 있다. 또한 제자도는 바로 목회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목회자가 제자됨의 삶을 보이지 않는 이상 제자훈련은 시작도 할 수 없다. 제자훈련과 관련된 성경적인 원리와 함께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살펴보면서 한국교회가 나아가야 할 제자도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 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그래서 제자도를 통해 참된 복음의 영광이 드러나고 한국교회 안에 구원의 능력을 회복하는 데 작으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목회와신학」에서는 “신약교회의 제자도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신학자들의 대담을 마련하였다. 이 신학대담은 김경진 교수와 김상훈 교수가 함께 진행하였다.(정리·이봉춘 기자/사진·안유선 기자)



김경진 지금 나눌 주제인 제자도는 간단하게 정의한다면 가르치고 배워 지키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목회자에게로 넘어 올 때는 복음의 명확성과 연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목회자에게 있어서 제자도는 얼마나 복음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을 전달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제자도를 생각할 때 일차적으로 점검하고 관심을 기울어야 할 부분은 어떤 제도나 시스템이 아니라 본인의 설교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김상훈 참으로 중요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틀린 이야기 역시 아닙니다. 한국교회 목사님들의 설교를 우리가 다 분석한 것도 아니고 사람마다 다를 수도 있고 해서 결론을 내리기는 힘들지만, 목회자가 강단에서 올바른 복음을 선포하고, 그 복음을 들은 성도들이 우리는 어찌 할꼬 하면서 제자훈련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정상인데, 종종 이것이 한국교회에서는 거꾸로 일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는 목회자보다는 교인들의 열심에 제자도의 무게가 더 실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제자도의 문제는 목회자의 정체성과도 연결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이 제자도라는 것을 단순히 가르치는 것으로만 생각한다면 오산이라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목회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목회자 자신이 정말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본을 보이고, 그래서 목회자의 설교와 삶을 보면서 교인들도 제자화가 되어 가는 것이지, 그냥 강단에서 아무리 미사여구를 사용해도 본인의 삶에서 그것이 구체화되지 못할 때 결국은 또 하나의 거품을 만드는 것밖에 되지 않을 것입니다. 먼저 성경에서 나타나고 있는 제자도의 개념을 살펴보면서 계속 대화를 진행해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김경진 사실 저는 신학의 다양한 주제가 있지만 특히 예수님과 제자들과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 공관복음에 나타난 제자도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정리를 해보았는데, 마가복음에 나타난 제자도는 주로 핍박적인 삶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제자로서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있고, 누가복음에는 어떤 핍박이나 환란과 같은 상황보다는 종말이 연기된 현실적인 삶의 문제를 강조하면서 청지기 개념이 제자도의 주요 주제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에서는 회당과 거의 분리된 상황 속에서 핍박을 받고 있었던 교회가 무엇보다도 회당을 떠나서 교회 공동체 내에서 새로운 신앙생활의 의한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특별히 교육에 제자도의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런 점들을 살펴볼 때, 공관복음에 말하는 제자도의 새로운 이해는 점점 침체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에 새로운 시각을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아무래도 제자도의 핵심은 배움과 실천이 겸비된 것으로 짧게 정의를 내리고 싶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는 제자들의 모습에 대해 귀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그 기사에서 마르다가 책망을 받으며 다소 부정적으로 표현되었지만, 그러나 그 앞에 있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놓고 비교해 볼 때에 마르다를 통해서는 실천을 마리아에게서는 배움을 강조하는 구도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르다와 마리아의 기사는 선택의 문제로 누구를 칭찬하고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두 모델을 다 추천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상훈 마르다와 마리아의 문제에 대해서는 동감하는 바입니다. 일반적으로는 마르다보다 마리아의 행위가 더 낳은 것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은 오히려 다른 해석에 대한 여지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마리아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는 좋은 편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더 좋은 편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다른 편은 보다 나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마르다에게 책망하셨던 것은 너무 분주해서 주님께 향한 마음이 흩어진 점이었습니다. 마르다는 사람을 비교하지 말고 자기가 할 일을 적어도 주를 위해서 했으면 그걸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본인이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또 남에 대해 신경을 쓰면서, 마리아에 대한 질시, 이런 것으로 인해 그 마음을 분산시킴으로서 주님께 집중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제자도를 점검할 때 특히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나타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의 말씀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부각되어야 할 점은 모든 말씀이라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현실이 너무 제한된 말씀만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입니다. 결국은 치우치는 제자도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김경진 누가복음에 나타나고 있는 청지기도에서도 우리가 예수님의 제자로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제자도의 개념이 보다 더 구체적으로 나타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실천하되 특별히 그늘지고 소외 받고 사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을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모습이 보여주는 것은 자기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에게로 초점이 확대되는 것입니다. 즉 제자도는 자기 중심의 훈련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자기 아닌 다른 사람에게 목표를 두는 것이 제자도의 주요 목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에 나타난 제자도의 중요한 개념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을 위한 자기 투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투자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김상훈 한편으로 요한복음에서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제자도를 접근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에 보다 많은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제자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으로서, 특히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사람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인 되심을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를 아는 지식이 중요하고 그에 대한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제자도에 대한 이런 접근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바울서신에서는 제자도의 개념이 자신의 종됨과 그리스도의 주되심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김경진 사실 바울서신에서는 복음서와 같은 제자도의 개념은 잘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바울서신의 강조점은 예수님의 정신을 삶에 적용하는 부분에 두고 있습니다. 각 지교회와 관련된 신학적, 윤리적인 문제들를 풀어가기 때문에 바울서신의 성격상 어떤 제자도를 강조할만한 여지가 많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방 말씀하신 것처럼 바울서신에 나타난 제자도의 개념은 로드십(lordship)의 개념과 상당히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점에 동감을 합니다. 잘 관심을 기울인다면 새로운 시각의 제자도의 모습이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실제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좋겠습니다. 한국교회 현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제자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김상훈 제자도에 대한 강조는 신학교에서 시작되었다기보다는 교회현장에서 출발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현장 이론가들의 이야기가 오히려 신학교에 들어와서 실천신학부분에서 정착을 한 것입니다. 신학교 안에서 좀더 깊이 있는 연구가 있어야 합니다. 신학자들이 한걸음 더 나가서 아예 그것을 각 상황에 적용시킬 수 있을 만큼의 옵션상황들을 만들어주므로 인해서 오히려 목회자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신학적 반성도 지적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그리고 실천신학 사이에서 제자도가 통합적으로 정리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목회현장에서 별로 쓸모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거의 도움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이 학문적인 영역을 어떻게 교회현장에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들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김경진 교회 현장 속에서의 제자도의 모습은 누구의 제자를 만드느냐에 초점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제자도라는 것은 연탄을 찍어내듯이 하나의 고정된 틀 속에서 사람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정말 그리스도의 말씀을 순종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든지 기꺼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함께 하고자 하는 열린 사람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헌신의 모습이라든지 섬김의 모습이라든지 또는 배우고자하는 이런 것들이 결국은 그 삶 속에서 녹아져서 나타나야 하는 것인데, 우리가 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성경공부를 배우기 위해 모여서 먹고 즐기는 펠로우십 정도로 그쳐버려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점은 가르치는 자들의 삶이라고 생각됩니다. 자신이 가르친 것을 자신의 삶 속에 반영이 되고 이것이 드러나고 확산이 되야 하는데 그런 점이 좀 아쉽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상훈 사회적인 관점에서 제자도를 생각해보는 것도 유익하다고 생각되어집니다. 초기의 한국교회 제자훈련의 과정은 지적인 부분보다는 감정적인 부분에 많은 초점을 두었습니다. 그러한 요인으로 한국교회가 부흥이 되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70년대, 80년대를 지나면서 감정에 호소는 부흥은 시들해지고, 한편으로는 교인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면서 지적인 욕구가 커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학생선교단체의 영향력이 교회에 미치게 되면서, 이제는 성령 받으라고 하는, 이런 감정에 호소하는 것보다는 뭔가 체계적으로 학습하고자 하는 열망이 생겼고 그것이 제자훈련과 접목이 되면서 한국교회를 강타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운동들이 80년대를 지나면서 도전을 맞게 되었습니다. 물론 성경공부를 그동안 많이 안 했기 때문에 성경공부를 하면서 얻는 유익이 상당히 많았어요, 그러나 성경공부를 열심히 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보이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적용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배움으로써 지적인 부분은 더 개발되지만, 구체적인 행동이 따르는데 있어서는 약해진 모습이 실제적으로 나타나면서 한국교회의 문제점으로 부각되었고, 한편으로는 영적인 부분에 소홀해지면서 반작용으로 오순절 운동이 큰 관심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흐름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은 이원화된 모습이라 할 수 있고, 제자훈련에도 이런 문제점이 드러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이원화 문제는 해결되어 있지 않은 채 남아 있습니다.

김경진 많은 공감이 가는 내용입니다. 저는 김 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러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렇게 시대의 흐름 속에서 목회자는 어떠한 모습을 보여 주었을까 라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드리는 것은 결국은 목회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제자훈련이라는 것이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지만, 그 핵심은 목회자에게 있지 않을까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는 계속 배워야 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도를 시작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목회자들이 스스로 배우지 않는 상태에서 다 배운 것처럼 가르치고 교인들을 데려다 놓고 지도만 하려고 한다면 제가 보기엔 안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들도 제자로서 꾸준히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이 있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배움과 함께 마가복음에 나오는 환란이나 고난 앞에서도 꿋꿋이 견딜 수 있는 제자도의 모습이 나올 수 있는 것이고, 누가복음처럼 이제 가난하고 헐벗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그런 희생과 봉사의 정신을 갖춘 제자가 생겨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제자의 모습들이 목회자들뿐만 아니라 평신도 각자에게도 녹아 들어가야 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김상훈 방금 말씀하신 것처럼 제자훈련은 목회자가 먼저 제자가 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견해에 동의하는 바입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모델이 되신 것과 같은 원리라고 생각됩니다. 즉 예수님이 먼저 제자가 되어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역시 늘 주의 말씀을 배워서 이걸 가르치려고 하기 이전에 내가 먼저 그 말씀을 따르려고 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특정 교회가 제자훈련에 관한 많은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에 그것을 다른 목회자들이 듣고 훈련받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로 무분별하게 모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똑같은 모델을 베껴 가지고 똑같은 훈련을 통해 똑같은 교회를 만들어 가는 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고를 하되 카피하지 말고 자기의 모델로 자기의 능력에 맞는 모델을 생각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제자도는 목회자의 교회관 또는 목회관과 연결짓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경진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이 되는데 제자훈련이나 모든 목회에 있어서 중요한 것이 제자로서 늘 내가 겸손한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배우는 사람은 겸손하거든요. 자신과 하나님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추구해 나가야 할 자세입니다. 두 번째는 교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종이라는 자세를 갖는 것입니다. 군림하는 사람이 아니고 나는 종이다라는 것을 안다면, 복음서와 바울서신에서 말하고 있는 종의 개념을 오늘날 목회자들이 제대로만 인식해서 참된 정체성을 유지해 나간다면 오늘날 한국교회는 소망이 있지 않겠느냐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제자도와 공동체를 연결해 다루면서 마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현제 제자 훈련하면 일반적으로는 개인주의적이라는 성향이 매우 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자도와 공동체성을 어떻게 연결시키면 바람직하겠습니까?

김상훈 제자도와 공동체성은 동시에 고려되어야 할 대상입니다. 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첫째는 교회 안에서의 공동체성과 두 번째는 하나님 나라의 전체성이라는 관점에서 그렇습니다. 교회 안의 공동체성이 약화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제자훈련을 시키는 그 내용이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면, 이러한 그리스도의 말씀에는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늘 나오기 때문에, 그 말씀이 지켜지고 적용된다고 한다면 공동체성이 약해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공동체성과 서로에 대한 관계가 약화된다는 것은 제자훈련이 제대로 됐다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오히려 오늘날의 더 중요한 문제점은 한 교회 내의 공동체성 보다도 하나님 나라의 전체성의 부분에 있어서 제자훈련의 상당부분이 열려있지 못하다는 현실입니다. 개교회의 이기적인 측면이 강하다보니까 자기교회의 성장부분에 집착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다른 교회와의 연합운동뿐만 아니라, 한사람의 신자가 다른 그리스도인들과의 서로 협력하고 서로를 이해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대화가 안되는 상황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까지 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의 전체성에 대한 생각과 훈련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김경진 제자훈련이 공동체성을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단지 지식으로 끝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체성이 약화된다는 것은 결국 제자도가 개인적으로만 알고 그것이 활성화되지 못한다는 것이 아니겠어요? 머릿속으로만 적용됐고 결국은 삶 속에서 실천되지 않는다는 것인데, 그 문제의 원인이 어디 있겠는가? 그건 여전히 교육의 내용의 문제이라기보다도 결국은 이렇게 볼 수 있겠습니다. 배우는 사람은 가르치는 사람의 삶의 모습을 모방할 수밖에 없는데 목사님들의 삶에서 이웃에 대한 배려 또는 동료에 대한 배려 이웃사랑에 대한 그런 것들이 나타나고 또 먼저 믿은 사람이 그런 모습을 보여줄 때 새로 믿은 사람들이 거기에 따라가게 되는데 아직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저 그냥 하나님과 나의 개인적인 관계로만 끝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제자도가 공동체성과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말씀이 화석화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상훈 우리가 좀 소망이라 그럴까요? 꿈을 꾸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제자훈련의 중요한 요소는 확신과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야기하면서 제자도의 정신을 많이 강조했고 제자훈련의 내용에 있어서 그 개념이 성경말씀에 제대로 서있는 것을 많이 강조해왔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자훈련이 한국교회에 좋은 결과들을 많이 내고 있다고 전 생각을 합니다. 그것과 함께 이제 또 하나 추가될 게 있다면, 소망과 꿈과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제자도를 이야기하면서 한국교회에 바라는 기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훈련을 목회자 자신도 진정한 복음의 순수성에 바탕을 둔 제자도의 본질로부터 출발해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지고 한다면 그것이 교회 성장이라든지 공동체의 성숙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김경진 간략하게 정리를 하면서 마칠까 합니다. 제가 제자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중의 하나는 교회 안의 경건이 교회 밖까지 연결이 잘 안된다는 사실을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사회적인 문제가 생길 때마다 기독교인들이 연루되어있다는 것은 결국 한국교회의 제자훈련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교인은 많은데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부족하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고, 그러면 결국 오늘날 한국교회가 정말 제자훈련의 모습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얼마나 성경적인 원리를 따라서 바르게 가르쳐지고 있는 것이지를 점검해 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 라는 생각에서 제자도라는 주제를 살펴보았습니다. 성경에 근거한 제자도를 확실하게 정리함으로써 이번 기회에 한국교회가 제자도에 관한 개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참된 제자도가 한국교회에 일어나길 바랍니다.

김상훈 저는 끝으로 기독교 복음의 메시지가 현대 사회에 들리고 있느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교회답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제자도의 문제도 우리가 거론하는 이유가 이것이 현대의 기독교든 과거의 기독교든 간에 복음의 정신이 살아있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분명히 전달되고 있는지, 그리스도의 제자답게 살려고 하는지,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고 있는지 등의 문제를 점검하지 않고서는 한국교회가 이 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들려 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안에 제자도라고 하는 개념이 복음으로 더욱 순수해지기를 소망합니다.

김경진/총신대 신학과와 총신대신대원(M. Div.)을 나와 영국 글라스고우대학교대학원(Ph. D.)에서 공부하고 지금은 기독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신약학 교수로 있다.

김상훈/서강대 영어영문학과 총신대신대원(M. Div.)을 나와 남아공 스텔렌보쉬대학교(M. Th., D. Th.)에서 해석학과 신약학을 공부하고 지금은 평택대 신학전문대학원 신약학 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