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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가족들에겐 너무 먼 당신?

2008-06-07|조회 228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수명은 72.1살(2000년). 20년 만에 10살이 늘었다. 이처럼 빠르게 노령화사회가 진행되고 있지만 노인복지제도도 없이 여전히 가족의 손에만 기대는 사회에서 20년 뒤 아버지들의 설 자리는 어디일까?
도심 공원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바둑 장기로 소일하며 입을 굳게 다문 노인들이 대부분 남성인 것은 여성 노인들이 여전히 가사노동에 메여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남성들과 가족들의 단절을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하다. 오죽하면 텔레비전 드라마 제목이 `아버지처럼 살기 싫었어'일까. 남성의 황혼기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필요한 시기다.

“나에게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과묵한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일 뿐이었다. 이러저러한 학교 일들은 모두 어머니와 상의하면 끝이었고 아버지는 그저 반찬 투정을 하거나 청소가 안돼 있다고 화를 내시는 분에 불과했다. 어느새 환갑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항상 안방에서 신문을 보다 혼자 주무시고 우리 자매와 어머니는 다른 방에서 얼굴에 오이팩을 서로 붙여주며 웃고 떠드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 돼버렸다.
그렇게 아버지는 가족 안에서조차 소외되고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묵묵히 `혼자만의 가장놀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아버지에게는 평생 가장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 속에서 숨 한번 제대로 쉬어보지 못하고 감성까지 철저하게 메말라버린 남성이라는 껍데기만 남았을 뿐인 것을. 딸들과 오손도손 음식을 만들어 먹고 저녁식사 시간에도 재미있는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웃을 수 있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큰 희망사항일까.”

서강대 정유성 교수가 맡고 있는 `남성문화연구' 수업시간에 한 여학생이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이다. 이 강의 과제로 아버지와 자신의 삶에 대해 쓴 글에서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화조차 하기 힘들 만큼 멀어진 황혼기의 아버지를 안타까워하면서도 “돈만 벌어다주는 기계같았”거나 “술에 취해 어머니를 때리고” “어느날 딴 여자를 데리고 온 뒤 가족을 버린” “모순과 불합리의 결합체인 아버지”를 “닮고 싶지 않다”고 고백한다. 10~20대와 이들의 아버지의 사이에 얼마나 깊은 벽이 자라났는지를 절절하게 느끼게 하는 구절들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정 교수는 노후를 위해서라도 남성들의 문화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버지들은 전혀 심리적 성숙이라는 준비없이 나이를 먹고 있다. 노후 대책으로 돈과 건강에 대해서는 법석을 떨면서 정작 중요한 영혼과 정신,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왜 이리 무심할까. 공원에서 하루 종일 시간을 죽이는 한심한 신세가 될 것인지, 자라나는 세대와 풍성하고 행복한 관계를 맺으며 문화를 향유하는 노년을 보낼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직장에서도 힘들어 죽겠는데 가족의 요구는 왜 이리 많으냐며 불만을 털어놓는 아버지들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경제나 직장의 변화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가장 가까운 가족들만은 항상 숨죽이고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고집이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가족과의 관계를 통한 인간적, 감정적 성숙의 기회를 차단하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과 밤 늦게까지 가정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직장과 회식문화,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엄한 아버지를 강요하는 가부장적인 인습이라는 진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가족들의 침묵만을 강요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