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ㆍ선교사후보생모집

세계선교신학

바로가기

시사 뉴스

상세보기

Evacuation capital of Korea/ 2018-01-10

2018-01-12|조회 317

In the days of evacuation during the Korean War, Lee Jung-seob lived alone in Busan away from his family. He found housing in Beomil-dong, Dong-gu and travelled downtown to places such as Gwangbok-dong and Gukje Market to make a living and draw pictures. Lee frequented coffee shops in the Gwangbok-dong area. Not being able to afford paint, he drew on the silver paper lining of cigarette packs at the coffee shops. Lee Jung-seob’s masterpieces were born amongst the destitution of refugee-era Busan.

Busan was the provisional capital of South Korea from August 18, 1950, two months following the outbreak of war, through August 15, 1953, when the evacuated government returned to Seoul. South Korean president and bureaucrat politicians, military soldiers and war material suppliers congregated in Busan. As universities were relocated to Busan and intellectuals and artists flocked to Gwangbok-dong, the population of Busan grew from 400,000 to 1 million during the evacuation era. Gukje Market grew rapidly during the period. The Korean War was a defining era for 20th century Busan.

Remnants of evacuation capital Busan have added to the tentative list for UNESCO World Heritage Sites.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of Korea recently approved of the eight sites as candidates following an application from the city of Busan. These sites include the Provisional Capital Government Office (Provisional Capitol), Provisional Capital Presidential Residence (Gyeongmudae), Busan Modern History Museum (the American Embassy), Busan Regional Meteorological Administration (National Meteorological Observatory) and the United Nations Memorial Cemetery in Korea. It is the first time that 20th century modern cultural heritage, not a pre-modern relic from historical times leading up to the Joseon Dynasty, has made the UNESCO World Heritage Tentative List. The most notable piece of architecture among the historical sites is Provisional Capital Government Office located in Bumin-dong, adjacent to Gwangbok-dong. Built in 1925 as the Office for South Gyeongsang Province, it was used during the Korean War as the Provisional Government Office. Currently used as Dong-A University Museum, it is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attractive museums in the country.

The Tentative List is literally tentative. Sites on the list must pass many screening stages to be selected. The Cultural Heritage Administration added conditions to “add heritage that reflects the lives of the refugees and create a plan for preservation and maintenance.” Busan City needs to make an effort to remember the vestiges of the arts and culture of refugee-era Busan, including Lee Jung-seob’s artistic spirit and the coffee shops in Gwangbok-dong.


피란수도 부산


 6·25전쟁 피란 시절, 이중섭은 가족과 떨어져 혼자 부산에 살았다. 그는 동구 범일동에 거처를 구한 뒤 부산 도심의 광복동과 국제시장 등지를 오가며 생계를 마련하고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은 금강다방 르네쌍스다방 녹원다방 늘봄다방 등 광복동 일대의 다방을 즐겨 찾았다. 물감 구입할 돈이 부족했던 그는 다방에서 담뱃갑 은지에 그림을 그렸다. 이중섭의 명작들은 이렇게 피란기 부산의 궁핍에서 태어났다.

 ▷6·25 발발 두 달 후인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5일 정부가 서울로 환도할 때까지 부산은 대한민국의 임시수도였다. 대통령과 관료 정치인, 군인과 군수물자가 부산에 모였다. 대학도 부산으로 옮겼고 지식인 예술인들은 광복동으로 몰렸다. 40만 명이었던 부산 인구는 피란기 100만 명에 달했다. 국제시장이 급팽창한 것도 이 시기였다. 20세기 부산의 역사에서 6·25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피란수도 부산의 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최근 문화재청은 부산시가 신청한 임시수도정부청사(임시중앙청), 임시수도대통령관저(경무대), 부산근대역사관(미국대사관), 부산지방기상청(국립중앙관상대), 유엔기념공원(유엔묘지) 등 8곳을 잠정목록으로 승인했다. 조선시대까지의 유산이 아니라 20세기 근대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건축물은 광복동 옆 부민동에 있는 임시수도정부청사. 1925년 경남도청 건물로 지었으나 6·25전쟁기 임시정부청사로 사용되었다. 지금은 동아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전국의 박물관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공간 중 하나로 꼽힌다.

 ▷잠정목록은 말 그대로 잠정이다. 앞으로 몇 차례 더 심사관문을 거쳐야 한국의 후보로 최종 선정될 수 있다. 문화재청은 “피란민의 생활상을 반영하는 유산을 추가하고 보존관리 계획을 수립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부산시가 귀 기울여야 할 지적이다. 8건의 건축물뿐만 아니다. 피란기 이중섭의 예술혼과 광복동 다방을 비롯해 문화 예술의 흔적까지 기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어야 한다.


避難首都釜山


韓国戦争の避難時代、李仲燮(イ・ジュンソプ)は家族と離れて一人で釜山(プサン)に居を構えた。彼は東区凡一洞(トング・ポムイルドン)に住処を求めた後、釜山都心の光復洞(クァンボクドン)と国際市場などを行き来しながら生計を立てて絵を描いた。李仲燮はクムガン喫茶店、ルネサンス喫茶店、ノクウォン喫茶店、ヌルボム喫茶店など光復洞一帯の喫茶店をよく訪れた。絵の具を購入する金が足りなかった彼は、喫茶店でタバコの箱の銀紙に絵を描いた。李仲燮の名作は、このように避難期の釜山の貧しさから生まれた。

◆韓国戦争勃発から2ヵ月後の1950年8月18日から1953年8月15日、政府がソウルに還都する時まで、釜山は大韓民国の臨時首都だった。大統領と官僚政治家、軍人と軍需物資が釜山に集まった。大学も釜山に移り、知識人や芸術家たちは光復洞に集まった。40万人だった釜山人口は、避難期は100万人に達した。国際市場が急激に膨らんだのもこの時期だった。20世紀の釜山の歴史の中で、韓国戦争は極めて重要な時期だった。

◆避難首都釜山の遺産がユネスコ世界遺産の暫定リストに上がった。最近、文化財庁は、釜山市が申請した臨時首都政府庁舎(臨時中央庁)、臨時首都大統領官邸(景武台)、釜山近代歴史館(米大使館)、釜山地方気象庁(国立中央觀象台)、国連記念公園(国連墓地)など8カ所を暫定リストに承認した。朝鮮時代までの遺産ではなく、20世紀の近代遺産がユネスコ世界遺産の暫定リストに上がったのは今回が初めてだ。このうち最も目立った建築物は、光復洞の隣の富民洞(プミンドン)にある臨時首都政府庁舎。1925年に慶尚南道(キョンサンナムド)庁の建物として建てたが、韓国戦争期に臨時政府庁舎として使用された。今は東亜(トンア)大学博物館として使われており、全国博物館の中で最も魅力的な空間の一つに挙げられる。

◆暫定リストは文字通り暫定ある。今後数回の審査関門を経てこそ、韓国候補として最終に選ばれることができる。文化財庁は、「避難民の生活ぶりを反映する遺産を追加して、保存管理計画を策定せよ」という条件をつけた。釜山市が耳を傾けるべき指摘だ。8件の建築物だけではない。避難期の李仲燮の芸術の魂と光復洞の喫茶店をはじめ、文化芸術の痕跡までを記憶する努力を示すべきである。


避难首都釜山


  6·25战争期间在避难时,李仲燮和家人身处异地,独立在釜山生活。他在东区凡一洞找到住处之后,往来于釜山市中心光复洞和国际市场等地,维持生计并画画。李仲燮很喜欢去金刚茶房、复兴茶房、绿园茶房、常春茶房等光复洞一带的诸多茶房。他无足够的钱购买颜料,只好在茶房里在烟盒的锡箔纸上画画。李仲燮的名作就是诞生在避难期釜山的穷困潦倒之中。

 ▷6·25战争爆发两个月后,从1950年8月18日至1953年8月15日政府还都首尔之前,釜山是大韩民国的临时首都。总统、官僚、政客、军人和军火军备物资全部积聚在釜山。大学也迁至釜山,知识分子、艺术家等涌到了光复洞。原本40万的釜山市人口,在避难期曾达到100万人。国际市场急剧膨胀,也就是在那个时期。20世纪釜山的历史上,6·25战争是极其重要的时期。

 ▷避难首都釜山的遗产,登上了联合国教科文组织世界遗产的暂定目录。最近文物厅批准了釜山市提出申请的临时首都政府大楼(临时中央大楼)、临时首都总统官邸(景武台)、釜山近代历史馆(美国大使馆)、釜山地方气象厅(国立中央观象台)、联合国纪念公园(联合国墓地)等八处列入暂定目录。并不是朝鲜时代的遗产、而是20世纪的近代遗产列入教科文组织暂定目录,尚属第一次。其中最为突出的建筑物是位于光复洞旁边富民洞的临时首都政府大楼。它始建于1925年,原来是庆尚南道的道厅所在地,6·25战争时期被用作临时政府大楼。目前它是东亚大学博物馆,被认为是全国博物馆中间最具魅力的空间之一。

 ▷暂定目录,顾名思义就是暂定的。今后还需要经过几道审查关,才能最终确定为韩国的候选地。文物厅提出了附加条件,要求“追加反映避难民众生活情况的遗产,并制订保护管理的计划”。这是釜山市应该倾听的要求。不仅仅是八幢建筑物。要倾注更大努力,让人们记住避难时期李仲燮的艺术魂和光复洞茶房等文化艺术的痕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