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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만 '평화'인 아마겟돈의 땅, 예루살렘/ 2017-12-02

2018-01-28|조회 142
예루살렘 바위사원 일대 전경 모습(사진=두산백과)

[아시아경제 이현우 기자]미국의 트럼프 행정부가 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을 이주한다는 소식에 안그래도 시끄러운 중동 정세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이스라엘 주재 미국 대사관의 예루살렘 이전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한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중동 각국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중동지역 뉴스마다 이라크, 시리아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예루살렘은 흔히 이스라엘의 수도로 알려져있지만, 국제법상으로는 요르단령인 동부와 이스라엘령인 서부로 나뉜 중립구역이다. 현재는 이스라엘이 중동전쟁 당시 무력으로 탈취해 전체 도시를 장악하고는 있지만 실질적 수도역할은 텔아비브가 하고 있다.  

 

예루살렘이라는 도시 지명 자체는 아이러니하게도 '평화의 도시'라는 뜻이다. 히브리어 '예루샬라임(Yerushalaim)'에서 나온 이 지명은 고대 가나안 신앙에 등장하는 평화의 신, 샬림(Shalim)을 섬기던 도시였음을 의미한다. 지형적으로는 키드론 골짜기와 힌놈 골짜기를 끼고 가운데 솟은 구릉지대에 위치한 요새지로서 해발 780m에 위치해있다. 기원전 약 1000년경에 성경에 등장하는 이스라엘 왕국의 왕인 다윗이 점령, 아들 솔로몬 왕의 집권 후 성전이 세워지면서 성지로 불렸다.  

 

사실 예루살렘이 평화의 도시란 이름이 붙고 위치 또한 이스라엘의 중부지역에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북부 이스라엘 왕국과 남부 유대왕국의 중심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양대 국가를 통폐합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세운 다윗왕의 입장에서는 통합의 주춧돌이었으며 중요한 행정도시였다. 다윗시대 성벽은 둘레 1km 남짓의 작은 성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솔로몬 시대에 들어서서 성전이 세워지고 도시가 확장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솔로몬이 죽자마자 통합 이스라엘 왕국은 곧바로 다시 분열됐다. 북부 이스라엘과 남부 유다왕국의 남북조로 나뉜 예루살렘은 원래 유다지파 북부 경계에 위치한 도시로 유다 왕국의 수도가 됐다. 두 나라는 각각 앗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에 멸망당한 후, 페르시아 제국의 지역민 유화책에 따라 성전이 재건됐다. 그러나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정복으로 인해 그리스인들에 의해 성전이 다시 무너졌고, 그리스 왕조들과 이스라엘의 하스몬 왕조간 치열한 공방이 지속되면서 거의 폐허가 됐다.   

      

이후 로마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면서 일종의 식민지 앞잡이 노릇을 하던 헤로데란 인물에게 지역통치를 맡겼는데, 그가 바로 성경의 유아살해 명령으로 유명한 헤롯왕이다. 그는 로마의 내전 당시 처음엔 안토니우스에 줄을 섰다가 상황이 불리해지자 옥타비아누스로 줄을 갈아탔고,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황제가 되자 황제의 친구로 대접받았으며 로마정부로부터 많은 지원을 얻어냈다.

 

실제 예루살렘이 거대한 성지로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헤롯왕이 로마의 지원 속에 30여년에 걸쳐 성전을 재건한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그의 아들들이 실정을 거듭하면서 결국 로마가 자치권을 빼앗아 이스라엘 전역에 대한 직접 통치로 전환하자 서기 70년과 135년, 대대적인 반란이 일어나 예루살렘은 철저히 파괴됐다. 이후 로마인들은 이스라엘 전역을 유태인들이 가장 싫어하던 숙적 민족, 블리셋인의 이름을 따서 '팔레스타인'이란 이름으로 고쳐부르게 했다.

 

이후 역사동안에도 예루살렘은 조용했던 적이 없었다. 로마에서 이슬람, 다시 십자군, 몽골군, 마물루크, 오스만 터키 등 숱한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으며 주인이 수도없이 바뀌었다. 서기 7세기, 이슬람교가 탄생한 이후에는 유태교와 크리스트교, 이슬람교 3개 종교의 성지가 되면서 종교적 분쟁의 장이 되기도 했다. 1차 세계대전 와중에 영국에 점령, 위임통치령 시기를 겪은 후, 국제사회에서 유태인들의 입김이 강해지면서 전 세계 유태인들이 이주를 시작했다. 이후 수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속에서 오늘날 이스라엘의 정치적, 명목적인 수도로서 남아있다.


이현우 기자